[연재 09] 상대방이 말한 문제가 정말 문제인가? 문제 파악 대화법 — 해결하기 전에 문제를 다시 묻는 법
2026. 8. 27. 10:26ㆍ생각을 말하다

[연재 09] 상대방이 말한 문제가 정말 문제인가? 문제 파악 대화법 — 해결하기 전에 문제를 다시 묻는 법
상담실에서 사람을 만나다 보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는데도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담자는 분명 많은 이야기를 했다. 직장에서 있었던 일, 가족과의 갈등, 자신을 힘들게 한 사람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을수록 주변만 계속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상담자는 고민하게 된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정말 이 사람이 힘들어하는 문제일까. 어떤 내담자는 자신도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모른다. 어떤 사람은 알고 있지만 말하기가 두렵다. 수치스럽거나 불편해서 피하기도 한다. 때로는 아직 상담자를 충분히 신뢰하지 못해서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상담자가 너무 빨리 본질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상담자가 “당신의 진짜 문제는 이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오히려 상담자의 해석을 내담자에게 덮어씌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화가 계속 같은 곳을 맴돈다면 물어볼 수는 있다.
“지금까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혹시 우리가 가장 힘든 이야기는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 질문 뒤에 침묵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침묵을 지나면서 비로소 이전과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한다.
나는 여기에서 질문의 힘을 경험한다.
좋은 질문은 상대방의 마음속에 숨겨진 정답을 맞히는 기술이 아니다. 지금까지 말하지 못했던 것을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에 더 가깝다.
성경에도 생각해볼 만한 장면이 있다. 예루살렘 베데스다 연못가에 오랫동안 병을 앓던 사람이 있었다. 요한복음은 그가 38년 동안 그런 상태에 있었다고 기록한다.
예수는 그 사람을 보고 이상해 보일 정도로 단순한 질문을 한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38년 동안 병을 앓은 사람에게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흥미로운 것은 그 사람의 대답이다.
그는 곧바로 “예, 낫고 싶습니다”라고 답하지 않는다. 물이 움직일 때 자신을 연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고, 자신이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간다고 설명한다.
그에게 문제는 단순히 ‘병이 있다’는 한 문장으로 끝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오랜 시간 반복된 상황과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설명이 함께 있었다. 이 장면을 현대의 상담이론으로 단정해서 해석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한 가지는 생각해볼 수 있다.
눈앞에 보이는 문제와 그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문제는 같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런 일은 흔하다.
자녀가 부모에게 말한다.
“학원 가기 싫어요.”
부모가 곧바로 해결책을 찾으면 학원을 바꿀 수 있다. 조금 더 좋은 학원을 알아보거나 과목을 줄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 더 물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학원에서 무엇이 가장 싫은데?”
공부가 힘든 것인지, 친구와 문제가 생긴 것인지, 성적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선생님과의 관계가 불편한 것인지 처음에는 알 수 없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원이 말한다.
“요즘 일이 너무 많습니다.”
상사는 업무량을 줄여주는 방법부터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어려움은 업무의 양이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일 수도 있고, 특정 동료와 함께 일하는 것이 힘든 것일 수도 있다.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쌓여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정말 업무량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다.
우리는 아직 모른다.
그래서 묻는 것이다.
“일이 많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업무 가운데 특히 부담스러운 것은 무엇입니까?”
“업무량이 줄어들면 지금의 어려움도 해결될 것 같습니까?”
이 질문들은 정답을 찾아내는 공식이 아니다.
상대방이 처음 내놓은 문제를 조금씩 펼쳐보는 질문이다. 나는 문제를 들으면 해결하고 싶어 하는 마음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직장에서는 빨리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많다. 하지만 해결책을 빨리 내놓는 능력이 오히려 문제를 잘못 해결하게 만들 때가 있다.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 실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회의에서도 이런 일이 생긴다.
“매출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면 곧바로 광고를 늘리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가격을 낮추자거나 영업 인력을 보강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그 전에 물어볼 수 있다. 전체 매출이 떨어진 것인가. 특정 제품만 떨어진 것인가. 기존 고객이 떠난 것인가, 신규 고객이 줄어든 것인가. 언제부터 나타난 현상인가.
질문이 달라지면 문제가 달라지고, 문제가 달라지면 해결책도 달라진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플라톤의 『에우튀프론』에서 에우튀프론은 자신이 경건함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답을 가르쳐주기보다 계속해서 ‘경건함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에우튀프론이 구체적인 사례를 답으로 내놓으면 소크라테스는 그 사례들을 모두 경건한 것으로 만드는 공통된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처음에는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질문을 거치면서 자신이 사용하던 말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게 된다.
좋은 질문은 이렇게 사람을 한 단계 안으로 데려간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여기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첫 번째 답을 듣고 곧바로 해결책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그것이 왜 문제입니까?”
“언제 가장 크게 느껴집니까?”
“그 문제가 해결된다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그리고 때로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묻는다.
“혹시 지금 말씀하신 것 말고 우리가 아직 이야기하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까?”
이 질문에는 기술보다 태도가 먼저 필요하다.
상대방이 말하지 않은 것을 억지로 캐내겠다는 태도가 아니다. 내가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상담자도 틀릴 수 있고 부모도 틀릴 수 있다. 상사도 직원의 문제를 잘못 이해할 수 있다.
질문은 상대방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상대방의 문제를 듣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생각한 문제를 상대방에게서 확인하려 하고 있는가?
AI 시대에는 이 구별이 더욱 필요하다.
“직원이 업무에 의욕이 없습니다. 어떻게 동기를 부여하면 좋을까요?”
AI에게 이렇게 물으면 동기부여 방법을 금세 정리해 줄 것이다. 하지만 직원의 문제가 정말 ‘동기 부족’이 아니라면 어떨까. 업무가 불분명한 것일 수도 있고, 상사와의 관계가 문제일 수도 있다. 과도한 업무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관찰한 몇 가지 행동을 보고 ‘의욕이 없다’고 해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AI에게 해결책을 묻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에게 다시 묻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다시 묻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해결하려는 문제가 정말 문제인가?
질문은 답을 늦추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제대로 묻지 않고 빨리 얻은 답은 엉뚱한 문제를 열심히 해결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문제 앞에서 답이 떠오를수록 한 번쯤 멈추어 물어보면 좋겠다.
상대방이 처음 말한 문제가 전부인가. 그 문제 뒤에는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지금 해결책을 찾고 있는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문제를 다시 묻는다는 것은 해결을 미루는 일이 아니다.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다시 확인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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