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08] 나는 제대로 묻고 있는가?

2026. 8. 25. 16:44생각을 말하다

[연재08]  나는 제대로 묻고 있는가?
질문한다 — 답이 넘쳐나는 시대에 질문하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



예전에는 모르는 것이 생기면 답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책을 찾아야 했고, 전문가에게 물어야 했으며, 여러 자료를 뒤져야 했다. 직장에서 보고서 하나를 작성하려고 해도 필요한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들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인공지능에게 질문하면 몇 초 만에 자료를 정리해준다. 긴 문서를 요약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비교하고, 필요한 정보를 표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해결책까지 제안한다. 답을 얻는 일이 이렇게 쉬웠던 시대가 있었을까.

그런데 이상하다. 답은 많아졌는데 우리의 문제가 그만큼 쉬워진 것 같지는 않다. 직장에서 갈등은 여전히 생기고,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조직에서는 수많은 회의를 하고 보고서를 만들지만 정작 무엇이 문제인지 합의하지 못할 때가 있다. 개인의 삶에서도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고민한다.

어쩌면 우리가 답을 찾는 능력만큼 길러야 할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질문하는 능력이다. 나는 질문을 단순히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질문은 눈앞에 드러난 문제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게 한다.

“어떻게 해결하지?” 라고 묻기 전에,
“우리가 지금 해결하려는 것이 정말 문제인가?” 라고 물을 수 있다.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생각이 향하는 방향은 전혀 다르다.

상담 현장에서도 처음 말한 문제가 실제 문제의 전부가 아닌 경우를 만난다.

“남편 때문에 힘들어요.”
“직장 상사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요.”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요.”

상대방의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해결책을 생각하기 쉽다. 부부관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직장 상사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아이를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 답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음과 다른 문제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질문이 필요하다.

“언제 가장 힘드세요?”
“그 일이 생기기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 사람이 달라지기를 원하는 겁니까, 아니면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겁니까?”

질문을 거듭하다 보면 표면에 있던 문제가 조금씩 걷힌다. 좋은 질문은 없던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곳에 있었지만 아직 말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을 밖으로 나오게 한다.

나는 이것이 질문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오래된 이야기와 고전에서도 질문은 사람의 생각을 움직이는 장치로 자주 등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에게 지식을 일방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질문을 이어가며 상대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을 다시 살펴보게 했다. 질문은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들기 위한 말재주가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과정이 될 수 있었다.

성경을 읽어도 질문하는 장면을 자주 만난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답만 전달하지 않았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질문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원하는 것, 믿고 있는 것을 말해야 했다. 질문은 사람을 정보의 수신자로만 남겨두지 않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런 질문을 살펴보다 보면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질문은 물음표가 붙었다고 모두 같은 질문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형식은 질문이지만 이미 원하는 답이 들어 있을 수 있다.

“왜 그것밖에 못 했어요?”

이 역시 질문이지만 상대방의 생각을 듣기보다 평가를 전달하는 말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당시에는 어떤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라고 물으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질문하는 능력은 질문을 많이 하는 능력과 다르다. 때로는 상대방이 말한 문제가 정말 문제인지 다시 물어야 한다. 때로는 ‘예, 아니요’로 끝나는 질문 대신 상대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열린 질문이 필요하다. 첫 번째 대답을 들었다고 멈추지 않고 한 번 더 물어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가장 조심해야 할 순간도 있다. 내 질문 속에 이미 내가 원하는 답이 들어가 있을 때다.

사람은 자신이 믿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뒷받침하는 답을 찾는 질문을 하게 된다.

“요즘 직원들이 책임감이 없어진 것 같지 않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질문하는 순간부터 대화의 방향이 정해진다. 하지만 이렇게 바꾸어볼 수 있다.

“최근 직원들의 업무 방식에서 이전과 달라진 것은 무엇입니까?”

이제 다른 답이 들어올 공간이 생긴다. 질문은 답을 얻기 위한 통로이기도 하지만 내 생각 밖의 것을 들어오게 하는 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AI 시대에 질문이 더욱 중요하다. AI는 내가 던진 질문에 놀라울 만큼 빠르게 답한다. 문제의 원인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달라고 하면 정리하고, 해결책을 열 가지 달라고 하면 열 가지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여기에는 놓치기 쉬운 것이 있다.

AI가 아무리 좋은 답을 만들어도 내가 엉뚱한 문제를 질문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직원의 업무성과가 떨어졌는데 처음부터 ‘직원의 동기부족’을 문제라고 규정하고 AI에게 해결책을 물으면, AI 역시 그 문제를 중심으로 답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프롬프트를 잘 만드는 법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나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문제인가. 
나는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내가 듣고 싶은 답을 얻기 위해 질문하고 있지는 않은가.
반대편에서 보면 이 문제는 어떻게 보일까.
그리고 아직 묻지 않은 질문은 무엇인가.

인공지능에게 질문하기 전에 이런 질문을 나에게 던질 수 있다면 AI의 역할도 달라진다.
AI에게 정답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 질문을 검토하게 할 수 있다.

“내가 문제를 이렇게 보고 있는데 다른 가능성은 무엇인가?”
“내 질문에 어떤 전제가 숨어 있는가?”
“내가 놓친 질문을 만들어 달라.”
“내 생각에 반대되는 관점에서 질문해 달라.”
그러면 AI는 답을 대신 내려주는 존재에서 내 생각을 넓혀주는 도구가 된다.

1부에서 우리는 관찰에 대해 생각했다. 무슨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사실과 해석을 구별하고, 말과 행동의 변화를 관찰하고, 읽은 정보 속에서 의미를 찾았다. 하지만 잘 보았다고 생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본 것에 질문해야 한다. 상대방이 말한 문제가 정말 문제인지 묻고, 생각을 열어주는 질문을 만들어보고, 첫 번째 대답에서 멈추지 않고 한 번 더 들어가 볼 것이다. 내 질문 속에 이미 답을 숨겨놓고 있지는 않은지도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질문의 방향을 나 자신에게 돌려보려고 한다. 인공지능에게 묻기 전에 나는 나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답이 귀했던 시대에는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앞서갈 수 있었다. 답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에는 조금 다른 능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알아차리는 사람.
첫 번째 답을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자신이 던진 질문마저 다시 질문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이제 답을 찾기 전에 한번 물어보려고 한다.

나는 제대로 묻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