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0. 23. 09:50ㆍ인공지능과 함께 걸어가다
[AI로 창업하기 03] 김 부장의 낡은 수첩이 사업 아이디어가 되기까지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AI와 함께 기획하고, 조사하고, 눈앞의 시제품으로 만드는 법

수첩 속에는 오래된 기록만 있는 줄 알았다
토요일 아침, 김 부장은 책장 아래 칸에서 낡은 수첩 몇 권을 꺼냈다. 사업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정리해 보라는 말을 들었지만, 막상 무엇을 적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활용품 유통 분야에서 오래 일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런데 그것을 사업의 강점으로 설명하려니 문장이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상품을 잘 안다.’
‘거래처와 소통을 잘한다.’
‘고객 응대를 오래 했다.’
적고 보니 어느 이력서에서나 볼 법한 말이었다. 자신이 겪은 수많은 상황과 시행착오가 이 짧은 문장 안에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경력은 길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랐다.
수첩의 표지는 손때가 타 있었고, 안쪽에는 급하게 받아 적은 숫자와 제품 이름이 뒤섞여 있었다. 김 부장은 페이지를 넘기다가 한 문장 앞에서 손을 멈췄다.
‘사진보다 무거움. 어머니가 쓰기 불편하다고 함.’
옆에는 반품 처리 과정과 다음 상담에서 확인할 사항이 적혀 있었다. 그 일을 기억했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주문한 고객이었지만, 실제로 사용하실 분에게는 무게가 부담스러웠다. 제품이 불량한 것은 아니었다. 구매 전에 충분히 확인하지 못한 조건이 있었던 것이다.
몇 장 뒤에는 이런 기록도 있었다.
‘선물용인데 포장 상태 문의.’
‘손잡이 안쪽 폭 확인 요청.’
‘세척 방법 설명 부족.’
‘제품 여러 개를 비교하다 구매 포기.’
그때는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메모였다. 고객에게 답하고, 거래처에 확인하고, 반품을 마무리하면 다음 일로 넘어갔다. 그런데 창업을 준비하는 눈으로 다시 보니 공통점이 보였다. 고객은 물건이 없어서만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맞는 물건인지 판단할 정보가 부족해 망설이기도 했다.
김 부장은 수첩을 책상 위에 펼쳐놓았다.
“내가 오래 해온 일이 제품을 파는 것만은 아니었네.”
고객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듣고, 여러 조건을 비교하고, 구매 전에 확인할 내용을 설명하는 일도 해왔다. 너무 익숙해서 전문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동료가 물어보면 바로 답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많이 해보지 않았다.
그동안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찾으려면 자신이 모르는 최신 분야부터 공부해야 한다고 여겼다. 유행하는 상품을 알아보고,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고, 남들이 아직 하지 않은 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오래 일한 분야는 오히려 평범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수첩 속 고객의 질문은 평범하지 않았다. 손잡이의 폭과 제품의 무게를 물었던 사람에게는 그것이 구매를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이었다. 김 부장이 대수롭지 않게 설명해 주던 몇 마디가 그 사람의 선택을 도왔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그 경험이 수첩과 기억 속에 흩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기억나는 사례만으로 판단하면 유난히 힘들었던 고객이나 최근의 일이 더 크게 떠오를 수 있었다. 기록을 정리해 반복되는 문제를 살펴보고 싶었지만, 수첩 여러 권을 혼자 분류할 생각을 하니 벌써 시간이 걱정됐다.
그때 AI가 떠올랐다. 이번에는 “잘될 만한 사업을 추천해 줘”라고 묻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가진 재료부터 정리해 보기로 했다. 회사나 고객의 비공개 자료를 그대로 옮기는 대신, 개인과 거래처를 알아볼 수 있는 내용은 빼고 자신이 일반화해 설명할 수 있는 상황만 새로 적었다.
제품 선택이 어려웠던 이유, 고객이 구매 전에 물었던 질문, 자신이 도왔던 방식으로 항목을 나눴다. 기록하다 보니 잊고 있었던 장면도 떠올랐다. 전화로 몇 번이나 설명했던 사용법, 반품을 줄이기 위해 추가했던 안내, 신입 직원에게 꼭 확인하라고 당부했던 조건들이었다.
김 부장은 새 문서의 첫 줄에 이렇게 썼다.
“내가 반복해서 해결해 온 문제 가운데, 지금도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는 자신의 과거와 앞으로의 사업이 함께 들어 있었다. AI에게 맡길 첫 번째 일도 정해졌다. 미래를 대신 예측해 달라고 하기 전에, 자신이 지나온 현장에서 무엇이 반복되었는지 함께 살펴보는 것이었다.
사업의 재료가 꼭 낯선 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김 부장에게는 먼저 읽어봐야 할 자신의 기록이 있었다.
경험에서 떠오른 생각을, 사업의 질문으로 바꾸다
김 부장은 정리한 사례를 챗GPT에 입력했다. 이번에는 요청도 달랐다.
“나는 생활용품 유통 분야에서 오래 일했고, 지금은 작은 사업을 준비하고 있어. 아래 사례를 읽고 고객이 겪은 불편을 유형별로 정리해 줘. 내가 실제로 도왔던 부분과 아직 확인이 필요한 추정을 구분해 줘.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하기 전에, 내 경험에서 더 알아야 할 내용을 질문해 줘.”
곧 질문이 돌아왔다. 어떤 고객에게 비슷한 문의가 반복됐는지, 고객이 지금은 어떻게 제품을 고르는지, 설명을 들은 뒤에도 구매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김 부장은 답을 적다가 몇 번 멈췄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고객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을 응대했다. 그러나 ‘제품을 고르는 데 어려움을 겪는 고객’이 누구인지, 그 어려움이 얼마나 자주 생기는지까지 정리해 본 적은 없었다. 개별 상황을 해결하는 능력과 사업의 대상으로 정의하는 일 사이에는 새로운 작업이 필요했다.
대화를 이어가며 생각은 조금씩 구체화됐다. 처음에는 ‘중장년을 위한 생활용품 쇼핑몰’이라는 큰 그림을 떠올렸다. 이후에는 제품을 잔뜩 진열하기보다, 사용 목적과 관리 조건을 묻고 비교에 필요한 정보를 안내하는 방식에 관심이 생겼다.
아직 사업으로 검증된 것은 없었다. 다만 고객에게 무엇을 도우려는지 설명하는 문장이 생겼다.
‘생활용품 선택이 어려운 고객에게 사용 상황에 맞는 비교 정보를 제공한다.’
이 문장을 바탕으로 소개문과 제안서의 목차를 만들어볼 수 있었다. 고객에게 보낼 이메일도 준비할 수 있었다. 같은 내용을 블로그에서는 친근하게 풀고, 협업을 제안하는 문서에서는 문제와 제공 범위를 명확하게 설명하도록 요청했다. 김 부장이 전달하고 싶은 내용은 같았지만, 읽는 사람과 목적에 따라 표현을 달리하는 연습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말투를 지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았다. ‘따뜻하게 써줘’라는 요청보다 누구의 어떤 걱정을 덜어줄 글인지 설명했을 때 수정 방향이 분명해졌다. ‘전문적으로 써줘’라고 하면 어려운 표현이 늘기도 했지만, 근거와 확인할 사항을 구분해 달라고 하자 자신이 원하는 문서에 가까워졌다.
브랜딩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처음에는 이름과 로고부터 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고객이 무엇 때문에 찾아와야 하는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멋진 이름도 방향을 잡아주지 못했다. 챗GPT와 대화하며 자신이 제공할 도움, 제공하지 못하는 범위, 고객에게 약속할 내용을 먼저 적어보기로 했다.
다음에는 퍼플렉시티를 살펴봤다. 자신의 생각이 실제 시장과 얼마나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퍼플렉시티는 답변에 원문으로 연결되는 인용을 제공하므로, 시장이나 경쟁 서비스를 조사할 때 근거를 따라가며 확인하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김 부장은 국내의 유사 서비스와 제품 비교 방식을 찾아보기로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 생각을 뒷받침하는 자료만 모으지 않는 일이었다. 이미 충분히 잘 해결되고 있는 문제라면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고객이 불편해도 돈을 내고 해결하고 싶을 정도는 아닐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챗GPT는 기획만 하고 퍼플렉시티만 조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챗GPT에도 웹 검색과 심층 리서치 기능이 있으며, 자료를 찾아 종합하고 출처가 포함된 보고서를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김 부장은 도구를 우열로 줄 세우기보다, 자신이 작업을 구분하고 결과를 확인하기 편한 방식으로 역할을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 클로드의 아티팩트 기능을 보며 다음 가능성을 떠올렸다. 글로 적은 서비스를 누군가 직접 눌러볼 수 있는 화면으로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아티팩트는 코드나 문서뿐 아니라 대화에서 만들어진 인터랙티브 도구와 시제품을 다루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김 부장의 머릿속에 세 가지 작업이 이어졌다. 자신의 경험을 정리해 사업 가설을 만들고, 외부 자료로 확인하고, 고객에게 보여줄 형태로 구현하는 과정이었다. 물론 도구를 바꾸기만 하면 이 과정이 자동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각 단계에서 무엇이 확인됐고 무엇이 남았는지 정리하는 일은 자신이 해야 했다.
그는 수첩에 화살표 대신 짧은 문장을 적었다.
“내가 아는 문제를 정리하고, 지금도 필요한지 확인하고, 직접 사용해 볼 수 있게 만든다.”
처음으로 도구 이름보다 해야 할 일이 먼저 보였다.
기억 속 상담을, 고객이 눌러볼 수 있는 화면으로 옮기다
김 부장은 첫 시험의 범위를 줄였다. 생활용품 전체를 다루지 않고, 책상 위에 놓인 머그잔을 예로 삼았다. 고객이 사용하는 장소와 선물 여부,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을 선택하면 비교할 항목을 보여주는 간단한 안내 화면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먼저 챗GPT와 질문 순서를 정리했다. 제품을 추천하기 전에 무엇을 물어야 할까. 혼자 사용하는지, 선물인지, 주로 어디에서 사용하는지부터 물을 수 있었다. 세척의 편리함이나 무게처럼 실제 선택에 영향을 주는 조건도 있었다.
김 부장은 수첩을 보며 불필요한 질문을 지웠다. 고객이 대답해도 안내가 달라지지 않는 질문까지 넣으면 과정만 길어질 것 같았다. 반대로 자주 오해가 생겼던 부분은 빠뜨리지 않으려 했다. 현장에서 익힌 기준이 화면의 질문을 고르는 데 쓰이기 시작했다.
그다음에는 공개된 경쟁 서비스와 상품 안내 방식을 조사했다. 퍼플렉시티에 요청할 때도 범위를 좁혔다. 국내 서비스인지, 현재 운영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지, 개인화 추천인지 단순한 분류인지 구분해 달라고 했다. 업체의 공식 설명과 다른 사람이 평가한 내용을 섞지 않도록 요청했다.
결과를 받은 뒤에는 원문을 열었다. ‘맞춤 추천’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실제로는 인기 상품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었고, 자신이 생각한 기능과 비슷해 보여도 대상 고객이 달랐다. 자료의 날짜와 서비스가 설명하는 범위를 살펴보니 요약만 읽었을 때와 판단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었다.
김 부장은 경쟁사가 있다는 사실에 잠깐 실망했다. 이미 누군가 하고 있다면 늦은 것은 아닐까. 그러나 다시 보니 비교할 기준도 생겼다. 고객에게 어떤 질문을 하는지, 결과에 어떤 이유를 설명하는지, 선택 이후의 안내는 어떻게 제공하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그는 “내 서비스가 더 좋다”는 문장 대신 확인할 질문을 적었다. 고객이 기존 방식에서 어려워하는 지점은 무엇인지, 자신의 설명이 그 불편을 줄일 수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자료가 적은 항목은 억지로 결론을 채우지 않고 고객에게 확인할 과제로 남겼다.
기초 구성이 잡힌 뒤 클로드에 시제품을 요청했다.
“중장년 고객이 생활용품을 비교하기 전에 사용할 안내 화면을 만들고 싶어. 사용 목적과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을 선택하면, 확인해야 할 항목과 예시 제품 정보를 보여줘. 글씨와 버튼은 읽기 쉽게 해줘. 실제 구매나 결제는 연결하지 말고, 제품 정보는 시연용이라는 표시를 넣어줘.”
요청에는 자신의 현장 경험도 넣었다. 어려운 용어를 줄이고, 이전 단계로 돌아갈 수 있게 하고, 제품 사진만 보고 결정하지 않도록 무게와 크기를 확인할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했다. 고객에게 전화로 반복해서 설명하던 내용이 화면을 구성하는 조건이 됐다.
첫 시제품이 나타났을 때 김 부장은 잠시 말을 잃었다. 자신이 종이에 적은 질문이 선택 화면으로 바뀌어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다음 내용이 나오고, 선택한 조건에 따라 확인 항목이 달라졌다. 완성된 쇼핑몰은 아니었지만,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보여줄 수 있었다.
직접 눌러보자 고칠 부분도 금세 보였다. 질문 하나는 너무 길었고, 결과 화면의 제품 정보는 실제 판매용 자료와 연결되지 않았다. 선택을 바꿨는데 이전 답변의 일부가 남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김 부장은 ‘만들어졌다’는 감탄 뒤에 ‘제대로 작동하는가’라는 검토를 이어갔다.
그는 가족에게도 화면을 보여줬다. 옆에서 설명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어디에서 멈추는지 지켜봤다. 자신에게 익숙한 ‘사용 환경’이라는 표현 앞에서 질문이 나왔다. “이건 집에서 쓸 건지 묻는 거야?” 김 부장은 문장을 바꿨다. ‘어디에서 주로 사용하시나요?’라는 말이 더 쉽게 읽혔다.
이 경험은 작은 깨달음을 줬다. 머릿속에서는 분명했던 서비스도 다른 사람이 사용하면 모호한 부분이 드러났다. 길게 설명한 사업계획서만으로는 발견하기 어려웠을 문제였다. 시제품은 고객을 설득하는 자료이면서, 자신의 생각을 시험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데이터 분석도 이 시험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어떤 질문에서 멈췄는지, 어떤 정보를 더 원했는지 기록하고 주제별로 정리하는 것이다. 나중에 판매 자료가 생기면 반품 사유나 반복 문의를 살펴볼 수도 있다. 다만 짧은 시험에서 나온 몇 사람의 반응을 전체 고객의 특징으로 확대하지 않기로 했다.
김 부장은 데이터가 많아야만 분석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먼저 어떤 판단을 위해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 질문이 명확해지니 기록할 내용도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었다.
토요일 아침에 펼쳤던 수첩이 그날 밤에는 시제품 옆에 놓였다. 과거의 경험과 새로운 도구가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새로운 사업의 실마리는, 반복해서 설명했던 일에 있었다
김 부장은 시제품을 완성했다고 창업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운영하려면 정확한 상품 정보와 관리 방법이 필요했다. 주문이나 결제를 연결한다면 추가 개발과 검토도 필요할 것이다. 지금 만든 것은 고객이 어떤 도움을 원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작은 시험판이었다.
그런데 이 시험판 하나가 생각보다 많은 질문을 만들어냈다. 고객은 제품을 추천받고 싶은 것일까, 비교할 기준을 알고 싶은 것일까. 제품을 판매하는 일이 맞을까, 업체의 안내자료를 개선하는 일이 더 적합할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부분과 실제로 필요한 서비스가 어디에서 만나는지 살펴보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상품을 더 싸게 공급받는 방법만 고민했다. 유통 분야에서 일했으니 자연스러운 출발이었다. 그러나 수첩을 정리하고 화면을 만들어보면서 다른 가능성도 보였다. 제품 정보가 부족한 작은 업체를 위해 고객 질문을 정리하거나, 비교 자료와 사용 안내를 구성하는 일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것이 사업이 될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했다. 업체가 직접 처리하고 있을 수도 있고, 이미 외주 업체에 만족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김 부장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사실과 고객이 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확인됐다는 사실을 구분하기로 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서 적용할 부분을 찾는 방법을 조금씩 알게 됐다. 반복해서 설명했던 일, 실수가 나면 뒤처리가 커졌던 일, 초보자가 자주 막혔던 일, 자료를 모으느라 오래 걸렸던 일에 표시했다. 거기에는 시간을 줄이거나 이해를 돕는 서비스의 실마리가 있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신입 직원이 제품 설명을 어려워했다면 교육자료나 상담 안내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거래처마다 요구 형식이 달라 자료를 반복해서 고쳤다면 제안서나 상품 정보 정리를 도울 수 있었다. 고객의 선택이 자주 지연됐다면 비교 기준과 질문 순서를 개선하는 시험을 할 수 있었다.
같은 방식은 다른 경력에도 적용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행정업무를 오래 한 사람은 신청자가 어디에서 서류를 잘못 이해하는지 알 수 있다. 교육 경험이 있는 사람은 학습자가 어떤 설명에서 막히는지 안다. 현장 관리자는 일정이 자주 어긋나는 지점과 점검에서 빠지기 쉬운 항목을 알고 있다.
김 부장은 이런 경험이 모두 곧바로 상품이 된다고 보지는 않았다. 다만 사업 아이디어를 찾을 때 살펴볼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경험을 자랑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누군가 겪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해결의 효과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AI는 그 사이의 작업을 도울 수 있었다. 흩어진 기억을 질문으로 정리하고, 메모를 분류하고, 설명을 문서로 바꾸고, 외부 자료를 조사하고, 간단한 화면으로 구현하는 과정이었다. 김 부장이 혼자였다면 각 단계 앞에서 미뤘을 일을 작게 시험해 볼 수 있게 해줬다.
그는 챗GPT와 함께 자신의 생각을 구조화하는 방식을 익혔다. 퍼플렉시티에서는 출처를 따라가며 주장과 근거를 구분하는 연습을 했다. 클로드에서는 글로 설명한 흐름을 실제로 눌러보는 형태로 옮겼다. 기능은 서로 겹쳤지만, 이번 작업에서 역할을 나누자 다음에 할 일이 명확해졌다.
중요한 것은 세 서비스를 모두 사용하는 실적이 아니었다. 이미 쓰는 도구로 충분하다면 그것부터 활용하면 됐다. 조사 결과가 부족하면 자료를 더 확인하고, 화면 구현이 어려우면 종이에 그린 시안으로도 고객 반응을 들을 수 있었다. 도구를 갖추는 일이 고객을 만나는 일을 계속 미루게 해서는 안 됐다.
김 부장은 비용을 계산할 때도 생각을 바꿨다. 자신이 직접 준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은 분명 장점이었다. 그러나 도구 사용료만 보고 이익을 예상하지는 않기로 했다. 자료를 확인하고 수정하는 시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 고객에게 약속한 결과를 제공할 비용까지 살펴야 했다.
그 대신 시험을 작게 나눌 수 있었다. 먼저 안내문을 보여주고 반응을 듣는다. 다음에는 비교 화면을 사용해 보게 한다. 실제로 도움이 됐는지 묻고, 어느 부분에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 확인한다. 큰 시스템을 만들기 전에 다음 판단에 필요한 증거를 하나씩 얻는 방식이었다.
김 부장은 오래 일하며 익힌 직관을 버릴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다만 직관이 알려주는 방향을 질문으로 만들고, 조사와 고객 반응으로 확인하는 습관을 더해야 했다. AI의 제안도 같은 방식으로 다룰 수 있었다. 그럴듯하다는 이유만으로 채택하지 않고 현장에서 시험할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밤이 깊어갈 무렵, 그는 처음 써두었던 세 문장을 다시 읽었다. 상품을 잘 안다. 거래처와 소통을 잘한다. 고객 응대를 오래 했다. 이번에는 그 아래에 더 구체적인 문장을 덧붙일 수 있었다.
‘고객이 제품을 고를 때 놓치기 쉬운 조건을 안다.’
‘반복되는 질문을 안내자료로 정리할 수 있다.’
‘그 안내가 실제 선택에 도움이 되는지 시험해 보고 싶다.’
이제 자신의 경험을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할 수 있었다. 아직 매출도, 완성된 사업도 없었다. 그러나 무엇을 확인해야 할지 모른 채 검색창만 바라보던 때와는 달랐다. 책상 위에는 조사할 질문과 고객에게 보여줄 화면이 놓여 있었다.
김 부장은 수첩을 덮지 않고 노트북 옆에 그대로 두었다. 다음 작업을 할 때도 펼쳐볼 생각이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동안,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함께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당신이 자주 받았던 질문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은 어려워했지만 당신은 익숙하게 해결했던 일은 무엇인가.
그 질문을 하나 골라 AI와 정리해 보면 어떨까. 막연한 경력이 구체적인 문제로 드러나고, 그 문제를 확인할 조사와 작은 시제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낡은 수첩에 적힌 고객의 한마디에서 김 부장의 첫 화면도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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