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03] 지금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2026. 8. 20. 00:51생각을 말하다

[연재03] 지금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5W1H — 판단하기 전에 사실부터 보는 법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민원을 접한다. 전화로 들어오기도 하고 인터넷을 통해 접수되기도 한다. 어떤 민원은 간단하지만 여러 부서가 함께 살펴봐야 할 만큼 복잡한 것도 있다. 담당자에게는 수많은 업무 가운데 하나일 수 있지만 민원인에게는 며칠, 때로는 몇 달 동안 마음을 쓰게 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래서 같은 민원을 두고도 바라보는 모습이 다를 수 있다.

민원인은 자신이 겪은 일을 중심으로 말한다. “몇 번이나 이야기했는데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왜 아무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습니까?” 그 사람에게는 그동안 겪은 불편과 답답함이 함께 들어 있다.

담당자의 눈에는 다른 것이 먼저 들어올 수 있다. 누가 접수했는지, 담당 부서가 어디인지, 언제까지 답변해야 하는지, 이전에도 같은 민원이 있었는지, 관련 규정은 무엇인지부터 확인한다.

어느 쪽이 맞을까.

둘 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문제를 보고 있다. 민원인에게는 ‘내가 겪은 일’이고 담당자에게는 ‘처리해야 하는 사안’이다. 그런데 자신의 자리에서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하면 서로 다른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할 수 있다.

이때 나는 아주 오래되고 단순한 질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육하원칙, 5W1H다.

누가(Who), 무엇을(What), 언제(When), 어디서(Where), 왜(Why), 어떻게(How).

너무 익숙한 말이라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 문제 앞에서 하나씩 물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가 이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가.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언제 시작되었고 언제 접수되었는가.
어디에서 발생했는가.
당사자는 왜 이것을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가.

여섯가지 질문을 던진다고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5W1H의 역할은 그보다 앞에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문제의 모습을 제대로 보는 것이다.

가령 민원인이 “직원이 너무 무책임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해보자. 담당자가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무책임한 직원의 문제’가 된다. 반대로 “민원인이 너무 예민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면 ‘까다로운 민원인의 문제’가 된다. 하지만 어느 쪽도 아직 사실을 충분히 본 것은 아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시 물어볼 수 있다.

“지난주 월요일까지 연락을 주겠다고 했는데 금요일까지 연락이 없었습니다.”

이제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누가 연락하기로 했는가. 월요일까지 연락하기로 한 기록이 있는가. 어떤 방법으로 연락하기로 했는가. 연락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사이 민원인은 몇 차례 문의했는가. 담당자는 그 문의에 어떻게 응답했는가.

처음에는 ‘무책임하다’는 한 단어로 보였던 문제가 여러 개의 사실로 나뉘기 시작한다.
민원인에게도 이 과정은 필요하다. 내가 겪은 불편과 감정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무엇 때문에 불편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해준다.

“기분이 나빴습니다”에서 멈추지 않고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떤 설명을 들었고, 나는 무엇을 요청했는데 어떤 답변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감정 뒤에 있는 사건이 보이기 시작한다.

담당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민원 한 건’이라는 행정적 분류를 넘어 그 안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보게 한다.

그래서 육하원칙은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주는 질문이 아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바라보던 사람들이 같은 사건을 펼쳐놓고 볼 수 있게 하는 질문에 가깝다.

영국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은 이 여섯 질문을 재미있게 표현한 적이 있다. 자신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여섯 명의 정직한 하인’이 있는데 그들의 이름이 What, Why, When, How, Where, Who라고 했다.

왜 하인이라고 했을까. 나는 이 표현을 이렇게 이해한다. 모르는 것이 생겼을 때 이 여섯 하인을 한 명씩 보내보는 것이다.

‘누가’를 보내 사람을 찾아본다.
‘무엇’을 보내 실제 일어난 일을 알아본다.
‘언제’와 ‘어디’를 보내 시간과 장소를 확인한다.
‘어떻게’를 보내 사건이 진행된 과정을 따라가 본다.
마지막으로 ‘왜’를 보내 그 사람이 말하는 이유와 배경을 살펴본다.

한 명만 보내면 한쪽밖에 보지 못한다. 여섯을 함께 보내면 흩어져 있던 사실들이 조금씩 연결된다. 그래서 나는 5W1H를 문제를 해결하는 여섯 개의 정답이라기보다 문제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여섯 개의 질문으로 보고 싶다.

이 질문들은 민원 현장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업계획서를 쓸 때도 “무엇을 할 것인가”만 정해서는 계획이 되지 않는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 언제 시작할 것인지, 어디에서 실행할 것인지, 왜 이 사업이 필요한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가 보여야 한다. 실행계획도 마찬가지다. ‘추진한다’는 말보다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드러날 때 계획은 구체적인 모습을 갖는다.

상담에서는 더욱 조심스럽게 사용할 수 있다. 내담자가 “요즘 회사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했을 때 상담자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원인을 먼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물어볼 수 있다. 언제부터 힘들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구와 있을 때 그런 감정이 커지는지, 어떤 상황이 반복되는지, 그때 어떻게 반응했는지 살펴본다.

성경을 읽을 때도 그렇다. 익숙한 본문이라고 곧바로 의미와 적용으로 넘어가기 전에 누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언제 어디에서 벌어진 일인지, 앞뒤에 어떤 사건이 있는지 관찰해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맥락이 나타난다.

분야는 달라도 여섯 질문이 하는 일은 비슷하다. 

내 생각보다 먼저 대상을 보게 한다.이것은 AI를 사용할 때도 생각해 볼 문제다.

어떤 민원이 들어왔을 때 관련 내용을 AI에게 넣고 “문제의 원인을 분석해 줘”라고 할 수 있다. AI는 빠르게 원인과 해결책을 정리해 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 입력한 정보가 민원인의 주장만 담고 있거나 담당자의 설명만 담고 있다면 어떨까.

AI가 아무리 정교하게 분석해도 출발점에서 빠진 사실까지 저절로 모두 알 수는 없다. 그래서 AI에게 “어떻게 해결할까?”라고 묻기 전에 나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누가 관련되어 있는가.
무슨 일이 있었는가.
언제,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왜 이것을 문제라고 말하는가.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가.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묻는다.
지금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5W1H가 언제나 객관적인 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여섯 질문에 답하는 사람 역시 자신의 경험과 관점에서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와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사이에 거리를 만들어준다.

나는 그 거리가 생각하는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본다.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빨리 답을 찾고 싶어 한다. 누가 잘못했는지 판단하고 해결책을 내놓고 싶어진다. 하지만 답을 서두르기 전에 여섯 명의 하인을 먼저 보내보면 어떨까.

그들이 가져온 사실들을 책상 위에 하나씩 펼쳐놓은 뒤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 어쩌면 생각의 시작은 답을 빨리 내놓는 능력이 아니라, 판단하기 전에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끝까지 바라보는 힘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