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24. 11:16ㆍ마음을 보다
DISC·MBTI·애니어그램·TCI를 임상 현장에서 바라보는 개인적인 생각

상담실에서 내담자들이 가장 자주 꺼내는 말 중 하나는 “저는 이런 유형이에요”라는 문장이다. 내담자는 자신 저는 주도형이고요, MBTI에서는 ESTJ형이며, 애니어그램에서는 탐구형이라고 말하는 내담자를 보게 된다. 때로는 TCI 검사 결과지를 들고 와서 “이게 제 성격의 과학적 증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다양한 검사 언어들은 모두 사람을 이해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는 닮아 있지만, 임상 현장에서 상담사가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같지 않다. 왜냐하면 이 검사들은 무엇을 설명하려는가, 그리고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가에서 분명한 차이를 가지기 때문이다.
먼저 DISC 성격유형 이론는 상담 현장에서 비교적 자주 사용한다. DISC는 사람의 내면 깊숙한 성격 구조를 설명하려 들지 않으며, 대신 사람이 환경 속에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행동 경향을 언어로 정리한다. 그래서 상담 장면에서는 “당신은 이런 사람이다”가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말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DISC는 내담자를 고정시키기보다는, 자신의 반응 패턴을 관찰할수 있도록 돕느다. 다만 이 검사 역시 성격의 본질이나 문제의 원인을 설명하는 도구가 되는 순간, 상담적 유용성은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MBTI는 ‘나는 누구인가’를 설명해주는 언어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내담자들이 많이 관심을 보이는 도구이다. 외향과 내향, 사고와 감정 같은 이분법적 구분은 자기이해의 출발점으로는 매우 직관적인 면이다. 상담 초반,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을 풀어내는 데 MBTI 언어가 도움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 MBTI가 가진 위험성 역시 분명하다. 유형이 곧 정체성이 되기 쉽고, “나는 이 유형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변화 가능성이 차단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 말은 MBTI가 틀리다는 말이아니다. MBTI는 대화의 언어로는 유용하지만, 임상적 설명이나 성격 구조를 논하는 근거로 사용되기에는 한계가 분명이 있다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다.
애니어그램은 어떨까? 애니어그램은 행동을 말해주는 도구가 아니다. 인간의 핵심 욕구, 두려움, 방어기제를 이야기하며, 내담자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상담 장면에서는 강한 공명과 통찰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임상적으로는 더욱 조심스러운 도구다. 애니어그램은 이론적·영적·상징적 요소가 혼합된 체계로, 학문적 심리검사라기보다는 자기성찰 모델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를 임상적 진단이나 성격의 본질 설명으로 사용할 경우, 내담자는 통찰이 아니라 자기규정에 머물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TCI 검사는 앞선 검사들과 다르다. TCI는 기질과 성격을 구분하며, 기질을 생물학적·신경화학적 기반과 연결하려는 시도를 한다. 충동성, 회피 성향, 보상의존 같은 요소들은 임상 장면에서 실제 행동과 정서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된다. TCI는 임상심리학에서 상대적으로 신뢰받는 도구로 여기서도 중요한 전제가 있다. TCI는 진단을 내리는 도구가 아니라, 평가를 보조하는 자료라는 점이다. 점수는 사람을 설명하지 못하고,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상담현장에서 관찰과 면담을 통해 TCI검사를 활용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이 네 가지 검사를 한자리에 놓고 보면, 임상 상담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분명해진다. DISC는 행동을 설명하는 언어로, MBTI는 대화를 여는 공감의 언어로, 애니어그램은 자기성찰의 서사로, TCI는 임상적 평가를 보조하는 자료로 사용할 때 각각의 자리를 지킨다. 문제는 이 경계가 무너질 때 발생한다. 유형이 진단이 되고, 점수가 정체성이 되며, 설명이 곧 결론이 되는 순간, 상담은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분류하는 일이 된다.
임상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검사가 더 정확한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검사 언어가 지금 이 내담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그를 한 자리에 묶어두는가. 상담사는 검사 결과를 해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검사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다. 결국 DISC도, MBTI도, 애니어그램도, TCI도 사람을 대신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다만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서로 다른 길을 잠시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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