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18. 21:15ㆍ마음을 보다
말보다 많은 걸 말해주는 그림 – HTP 검사로 들여다본 내담자의 마음

상담실에서 처음 내담자를 마주할 때, 우리는 말로 듣기 이전에 이미 많은 정보를 받는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태도, 앉는 자세, 눈빛의 움직임, 목소리의 떨림. 상담자는 그 조용한 단서들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관계의 첫 단추를 채워간다. 초기 면담은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다. 내담자의 마음 문을 여는 가장 섬세한 관찰의 시간이다.
이때 내담자가 상담실에 들어온 이유, 그 표면 아래 무엇이 숨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어떤 내담자는 비교적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지만, 많은 경우 보이지 않는 방어기제가 두껍게 자리 잡고 있다. 무언가를 말하려다 삼키는 입술, 과하게 밝은 척하는 웃음, 질문에 대한 반복적인 회피. 이런 모습들은 오히려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도구가 바로 HTP 검사다.
HTP(House-Tree-Person) 검사는 지시문 하나로 시작된다. “집, 나무, 사람을 그려보세요.” 단순한 그림 그리기처럼 보이지만, 이 검사는 내담자의 무의식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통로다. 말로는 하지 못하는 생각,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감정, 잊은 줄 알았던 상처들이 그림 속에 스며든다. 문이 없는 집, 너무 작게 그려진 나무, 손이 없는 사람… 그런 그림 속에 내담자의 두려움, 결핍, 기대, 관계에 대한 태도가 담겨 있다.
면담으로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던 내담자의 감정이, 그림을 통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왜 말을 아꼈는지, 무엇을 숨기고 싶었는지, 어떤 상처를 외면하고 있었는지 그림은 말 없이 상담자에게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이 검사는 판단의 도구가 아니라, 이해의 도구다. 내담자의 무의식을 들여다보기 위해 억지로 벽을 허물지 않아도 된다. 상담자는 그저 그림을 함께 들여다보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이 집은 어떤 집인가요?”,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렇게 시작된 질문은 면담보다 더 깊은 마음을 열게 만든다.
상담에서 면담, 검사, 상담의 흐름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여정이다. 초기 면담은 상담의 방향을 잡는 나침반이 되고, HTP와 같은 비문항 검사는 감춰진 무의식의 지도를 펼쳐 보이게 하며, 그 과정은 결국 진정한 관계 형성과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
내담자는 상담실에서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가장 깊은 마음을 보여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어렵고, 더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볼 수 있는 창이 있다는 것, 그것이 상담자에게도, 내담자에게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림 한 장이 시작이 되어, 조금씩 말문이 열리고, 마음이 닿게 되는 경험. 상담은 그렇게, 때로는 말보다 더 많은 걸 말해주는 한 장의 그림에서 시작된다.
HTP 검사로 무의식의 문을 두드리다
상담실에서 말을 꺼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처음 만난 내담자라면,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스스로도 정리가 안 된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일은 어렵고, 때로는 입을 열기도 전에 무언가 단단하게 굳어버린 듯한 침묵이 흐른다. 바로 그럴 때, 상담자는 그림이라는 다른 언어를 꺼낸다.
HTP 검사, 그러니까 집(House), 나무(Tree), 사람(Person)을 그리게 하는 그림검사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시작된다. "종이에 집, 나무, 사람을 하나씩 그려주세요." 단순한 지시처럼 보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 상담자는 내담자의 무의식과 만나게 된다. 말보다 빠르고, 방어 없이 드러나는 그 사람의 세계. HTP 검사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과 기억, 그리고 깊은 내면의 상징을 읽을 수 있는 창이 된다.
그림 하나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집은 가족, 보호, 소속감에 대한 상징이다. 집이 작고 멀리 그려졌는지, 문이 닫혀 있는지,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지, 창문이 없는지… 이런 디테일들은 내담자의 가정환경, 관계, 정서적 거리감을 은근하게 드러낸다.
나무는 자아와 성장, 생명력을 보여준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불안정함을, 가지가 너무 많거나 뒤엉켜 있으면 복잡한 감정 상태나 혼란을 상징한다.
사람은 자기 이미지와 대인관계를 나타낸다. 손이 없는 사람, 표정이 없는 얼굴, 뭔가 불균형하게 표현된 신체들… 때로는 그 사람이 말하지 못한 상처나 고립감을 그 속에서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상담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중요한 건 해석이 아니라 대화다.
"이 집에는 누가 살고 있나요?", "이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요?", "이 나무는 어디에 서 있나요?"
이런 질문은 내담자의 그림 속 세계로 조심스레 들어가는 문이 된다. 그리고 그 문을 열면, 내담자는 자신도 몰랐던 생각이나 감정, 혹은 너무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기억을 꺼내기 시작한다.
상담자는 그 대답을 통해 ‘이 사람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어디에 기대고 싶은가’를 파악하게 된다.
그림은 단지 도구일 뿐, 진짜 중요한 건 그 안에 깃든 이야기와 감정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종종 예상하지 못한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다. “이 집은 내가 어릴 적 살던 집과 비슷해요. 혼자 남겨졌던 기억이 나요.”, “이 사람은 힘이 없어 보여요. 저도 요즘 그런 느낌이 자주 들어요.” 그렇게 내담자의 마음은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한다. 말보다 그림이 먼저 말을 걸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HTP 검사는 그 자체로 완결되는 검사가 아니다. 면담과 함께할 때, 상담의 맥락 안에서 진행될 때 비로소 그 진짜 힘을 발휘한다. 상담자는 해석을 강요하지 않고, 그림을 함께 바라보며 묻고, 듣고, 공감한다. 그 과정 속에서 내담자는 점점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감춰둔 마음의 조각들을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이 검사의 핵심은 단순한 진단이 아니라 관계와 이해다. 그림은 내담자의 무의식을 말 없이 보여주는 창이고, 상담자는 그 창을 통해 조심스럽게 마음의 안쪽으로 들어가 ‘이 사람이 어떤 이유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지’를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사람이어야 한다.
HTP는 그림이고, 질문은 열쇠고, 상담자는 안내자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걷는 과정에서, 내담자는 자기 안의 어두운 방 하나에 작은 불을 켜게 된다. 상담은, 그 불빛을 지켜주는 일이다.
이상기질과 HTP 그림에 담긴 마음의 흔적
HTP 검사를 하다 보면 같은 지시를 줬는데도 그림은 사람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집을 그리라고 했을 뿐인데 어떤 이는 담담한 선으로 빠르게 끝내고, 어떤 이는 지우개를 몇 번이나 사용하며 망설인다. 상담자는 이 차이를 ‘잘 그렸다, 못 그렸다’로 보지 않는다. 그림은 성격이나 증상을 단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사람이 세상을 느끼는 방식을 비추는 창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울이나 편집적 성향처럼 마음의 긴장이 오래 지속된 내담자일수록, 그 흔적은 말보다 그림에 먼저 묻어난다.
우울한 상태에 가까운 내담자의 그림은 대체로 힘이 빠져 있다. 집은 작거나 구석에 몰려 있고, 창문이나 문이 거의 없거나 닫혀 있는 경우가 많다. 나무는 가늘고 가지가 위로 뻗지 못한 채 아래로 처져 있거나, 잎이 거의 없다. 사람 그림에서는 표정이 생략되거나 눈이 비어 있고, 손이 없는 경우도 잦다. 이때 상담자는 “왜 이렇게 그렸을까?”라고 해석을 앞서기보다, “이 집은 어떤 기분일까요?” “이 사람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같은 질문으로 내담자의 언어를 기다린다. 그러면 종종 “힘이 없어 보여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같은 말이 나온다. 그림은 우울을 증명하지 않는다. 다만 우울이 만들어낸 세계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상담자는 그 분위기를 존중하며, 에너지의 고갈과 관계의 거리감을 이해하게 된다.
편집적 성향이 강한 내담자의 그림은 전혀 다른 긴장을 품는다. 집은 담장이나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고, 창문은 작거나 위쪽에 배치되며, 문은 보이지 않거나 과도하게 잠겨 있는 경우가 있다. 나무는 뿌리가 강조되거나 가지가 뾰족하게 뻗어 외부를 경계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사람 그림에서는 눈이 지나치게 크거나, 시선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손이 주머니에 숨겨진 채 그려지기도 한다. 이때 중요한 건 “왜 이렇게 방어적이냐”는 판단이 아니라, “이 사람에게 세상은 얼마나 위협적으로 느껴질까”를 이해하는 것이다. 상담자는 “이 집은 안전한가요?”, “이 사람은 무엇을 조심하고 있나요?” 같은 질문으로 내담자의 경험을 불러낸다. 대답 속에는 경계심, 의심, 통제하려는 욕구가 조심스럽게 드러난다.
HTP에서 상담자가 해야 할 일은 ‘특징을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끌어내는 질문을 만드는 것이다. 집을 보고는 “누가 살고 있나요?”, 나무를 보고는 “이 나무는 어떤 계절을 살고 있나요?”, 사람을 보고는 “이 사람은 누구와 가장 가까운가요?”처럼 상징을 생활의 언어로 바꾸는 질문이 도움이 된다. 그러면 내담자는 그림 속 대상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해 말하기 시작한다. 직접 “나는 우울해요”라고 말하지 못하던 내담자가 “이 집은 너무 조용해요”라고 말하는 순간, 상담자는 무의식의 문턱에 서게 된다.
이렇게 꺼집어낸 이야기로 상담자는 내담자를 단정하지 않고, 맥락 속에서 이해한다. 우울의 그림은 에너지의 고갈과 상실의 경험을 말하고, 편집적 그림은 안전에 대한 갈망과 위협의 기억을 말한다. 중요한 건 그림의 ‘징후’가 아니라, 그 징후가 만들어진 삶의 배경이다. 그래서 HTP는 혼자 쓰이지 않는다. 면담에서 관찰한 태도, 상담 과정에서 드러난 관계의 패턴과 함께 엮일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결국 그림은 답을 주지 않는다. 질문을 준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내담자는 자기 마음을 조금 더 분명히 보게 된다. 상담자는 그 곁에서 서두르지 않고, 해석을 앞세우지 않으며, 그림이 들려준 이야기를 사람의 언어로 번역해준다. HTP는 그렇게, 이상기질을 ‘분류’하는 검사가 아니라 이해로 건너가는 다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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