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23. 11:01ㆍ마음을 보다
도형유형검사·기질검사·4체질을 임상 현장에서 바라보는 개인적인 생각

상담실에서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저는 태음인이에요.” “도형유형검사에서는 네모형이 나왔어요.” “기질로 보면 점액질이라 안정형이래요.” 도형유형검사에서는 네모형이며, 기질이론으로 보면 점액질의 안정형에 가깝다. 이 세 가지 설명은 묘하게 서로를 보완하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 상담사로서 이 언어들을 다룰 때, 나는 늘 한 걸음 물러서서 묻는다. 태음인, 네모형, 점액질, 안정형이라는 단어가 사람을 이해하는데 사용되는지 아니면 규정하는데 사용되느냐에 따라 주의가 달라진다.
도형유형검사에서 네모형이라는 해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설명이 꽤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안정, 책임감, 구조를 중시한다는 말은 실제의 나와 크게 어긋나지 않았으며, 상담 장면에서도 네모형이라는 언어는 대화를 시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내담자 역시 “맞아요" 라고 말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순간까지 도형유형검사는 충분히 유용하다. 그림이라는 매개를 통해 말이 나오고, 감정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여기서 “그래서 당신은 원래 변화에 약한 사람”이라고 덧붙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네모형이라는 도형은 지금의 나를 비추는 거울일 수는 있어도, 나의 전부를 규정하는 정체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임상 현장에서 도형유형검사는 언제나 지금 이 사람의 상태를 묻는 질문으로만 남아야 한다.
기질 이야기로 넘어가면, 점액질·안정형이라는 설명은 나에게 또 다른 언어를 제공한다. 급격한 변화보다 지속을 선호하고, 관계에서도 큰 파동을 만들기보다는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은 일상의 선택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맥락에서 DISC 성격유형 이론 같은 기질·행동 유형 검사는 임상 현장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쓰일 수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가 아니라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언어로 나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상담에서도 이 차이는 크다. 기질 언어는 자기비난을 줄이고, 선택의 여지를 남긴다. 다만 이 역시 선을 넘으면 위험해진다. 안정형이라는 설명이 “그래서 나는 원래 느리고, 바뀌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굳어질 때, 기질은 이해의 도구가 아니라 변명의 근거가 된다.
태음인이라는 체질 설명은 또 다른 통찰력을 제공한다. 사상체질에서 말하는 태음인은 신체적 에너지의 축적, 안정된 리듬, 특정 질환의 취약성 등을 중심으로 설명된다. 나 역시 태음인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몸의 반응과 생활 습관을 돌아보게 되었다. 임상 현장에서 체질 담론이 갖는 장점은 분명하다. 내담자가 자신의 예민함이나 무기력을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조건’으로 이해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체질은 심리의 언어가 아니다. 태음인이라는 설명은 몸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관계의 어려움이나 정서적 고통의 원인을 대신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체질이 성격을 대체하는 순간, 상담은 변화의 가능성을 잃는다.
이러한 이론이 하나의 사람을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는지가 분명해진다. 태음인은 몸의 리듬을 말하고, 도형유형검사는 현재의 정서적 선호를 비추며, 안정형 기질은 반복되는 행동 경향을 정리해준다. 이 설명들은 서로 충돌하지도, 완전히 겹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셋 중 어느 것도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임상 현장에서 상담사가 취해야 할 태도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유형을 조합해 ‘더 정확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언어를 지금 이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임시 지도에 해당한다.
상담은 사람을 분류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이 어떤 맥락에서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함께 탐색하는 과정이다. 나를 설명하는 말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더 조심해져야 한다. 태음인·점액질·안정형이라는 언어는 나를 가두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천천히,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발판일 뿐이다. 임상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유형의 정확도가 아니라, 그 유형을 다루는 상담사의 태도다. 결국 상담은 늘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도구는 사람을 이해하는 도구여야 하지 규정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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