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은 마음의 허기에서 시작된다

2025. 12. 22. 17:28중독이 묻고 성경이 답하다

중독은 마음의 허기에서 시작된다


요즘 들어 아무 이유 없이 피곤하고, 쉽게 지치고, 무기력해지는 날이 잦다. 뭔가를 하고는 있는데 의미도 모르겠고, 가만히 있어도 마음 한쪽이 계속 허전하다. 그런 날엔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들고, 달달한 간식을 입에 물고, 쇼츠 하나만 보려고 켠 유튜브에서 어느새 한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런데 끝나고 나면 어김없이 공허함이 밀려온다. 왜 이러지? 왜 이걸 하면서도 허전함은 더 커질까?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건 배고픔이 아니라 마음의 허기구나.’

스탠퍼드 의대의 정신과 교수 안나 렘키가 말한 중독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 감정이 하나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중독이라 부르는 많은 것들. 커피, 쇼핑, SNS, 게임, 유튜브 쇼츠 같은 것들은 도파민이라는 뇌 속 신경전달물질과 깊은 관련이 있다. 뇌는 자극을 받으면 도파민을 분비하고, 그 자극이 클수록 더 강하게 반응한다. 문제는 그 자극이 계속될수록 뇌는 그 자극을 ‘기준’으로 기억하고, 이전의 평범한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게 된다. 결국 더 강한 자극을 찾아 헤매게 되고, 거기에서 중독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 중독이 단순히 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우리가 자꾸 자극을 찾는 이유는 마음이 공허하기 때문이다. 내 안에 채워지지 않은 감정들, 외로움, 인정받고 싶은 욕구, 소속되고 싶은 마음, 의미를 찾고 싶은 갈망 같은 것들. 이런 마음의 허기가 있을 때, 우리는 무언가로 그 구멍을 막으려 한다. 그것이 자극적인 음식일 수도 있고, 짧고 강렬한 영상일 수도 있고, SNS 속 타인의 삶을 엿보는 일일 수도 있다. 도파민은 그렇게 마음의 허기를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오히려 더 허기지고, 더 공허해진다.

그래서 나는 잠시 멈춰보기로 했다. 아주 단순하게, 하루 중 스마트폰을 덜 보는 시간부터 시작했다. 처음엔 불안했다. 뭐라도 놓치고 있는 것 같고, 금단 증상처럼 손이 근질근질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 피곤한 걸까?’, ‘요즘 나는 뭘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스쳐 지나갔다. 질문이 생기니,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게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엔 좋았던 일들이 떠올랐고, 잊고 있던 감정들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그리고 알게 됐다. 내 마음은 자극보다 위로를 원하고 있었단 것을...

그 이후로는 자극을 줄이고 마음을 돌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운동을 하고, 찬물로 씻고, 글을 쓰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조용한 산책을 나가보기도 했다. 처음엔 억지로라도 해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불편한 것들이 내 마음을 아주 조금씩 따뜻하게 채워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도파민처럼 확 올라왔다가 금세 사라지는 기쁨이 아니라, 천천히 스며드는 감정이었다. 마치 허기진 마음이 천천히 포만감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중독은 단순히 나쁜 습관만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이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 신호를 무시하고 계속 자극으로 덮으려고 하면, 마음은 더 메말라간다. 진짜 필요한 건 더 많은 자극이 아니라,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내가 뭘 갈망하고 있는지, 뭘 잃어버렸는지, 무엇이 허기졌는지를 알아차리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중독은 마음의 허기다. 우리가 그 허기를 이해하고, 나를 돌보는 방식으로 채워갈 때, 비로소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제는 잠깐 멈추고,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물어볼 시간이다. 마음의 허기를 자극으로 채우는 대신, 경험과 연결, 쉼과 정직한 감정으로 채워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 시도는 나를 회복하는 첫 걸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