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의 그림자, 디지털 중독

2025. 7. 15. 17:09중독이 묻고 성경이 답하다

현대 사회의 그림자, 디지털 중독


지하철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다. 누군가는 채팅을 하고, 누군가는 게임 속 캐릭터를 움직이고 있다. 고요한 풍경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은 전쟁 중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성경을 펼치기보다 유튜브를 먼저 여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마음속 어딘가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지금, 믿을 수 없을 만큼 편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클릭 한 번으로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고, 손끝 하나로 사람들과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이 편리함 뒤에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자라고 있다. 디지털 중독. 그것은 조용히, 그러나 깊숙이 우리 안으로 파고든다. 어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아이들, 다음 세대가 그 그림자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

목회자로서 이 문제 앞에서 침묵할 수 없다. 디지털 중독은 단순히 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영혼의 문제이며, 공동체의 회복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이제, 이 중독의 실체를 직시하고, 하나님 앞에서 다시 삶의 중심을 회복해야 할 때다.

 


중독의 3단계, 그리고 그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

 

1. 호기심 –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지라"
모든 중독은 무해해 보이는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아이가 처음 스마트폰을 손에 쥐는 순간, 어른이 심심풀이로 게임을 설치하는 순간. 모두 ‘잠깐’이라는 말로 시작하지만, 그 잠깐이 인생을 삼킬 수도 있다. 창세기 3장.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바라보던 장면이 떠오른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지라." 하나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그들은 그저 ‘좋아 보였기 때문에’ 선택했다. 지금 우리의 디지털 환경도 그렇다. 보기 좋고, 재미있고, 유익해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는 유혹이라는 씨앗이 숨어 있다.

2. 충동 –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처음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정도는 괜찮아’, ‘내일은 줄일 거야.’ 하지만 충동은 점점 깊어진다. 밤늦게까지 화면을 들여다보며, 기도 시간을 놓치고, 사람과의 대화보다 디지털 속 자극에 반응하는 삶. 그 끝에는 항상 ‘후회’가 있다.  사울 왕이 그랬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알면서도, 백성의 눈치를 보고 자신의 판단을 우선시했다. 그 결과는, 하나님 앞에서의 거절이었다. 중독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음성을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의 자극을 선택하게 된다. 그때 우리는 무너진다.

3. 강박 – "돼지 먹는 열매로 배를 채우며"
마지막 단계는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상태다. 더 이상 즐기지도 못한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두렵고, 자신이 무너질 것 같기 때문에 또 한다. 이때 사람은 무기력에 빠지고, 관계는 끊기고, 영혼은 고립된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그는 결국 돼지우리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모든 것을 탕진한 후에야 아버지 집이 떠오른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더 추락해야 돌아설 수 있을까? 더 이상 무너질 곳이 없을 때까지 가야만 하는 걸까?


교회여, 그들을 향해 문을 열어라

이제 질문해야 한다. 교회는 어디에 있었는가? 아이들이 예배 시간에 게임을 하고 있을 때, 부모가 유튜브로 하루를 버티고 있을 때, 청년들이 새벽까지 SNS에 감정을 토해내고 있을 때, 우리는 그 곁에 있었는가?

중독은 단순한 훈계로는 끊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함께 걸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치유된다. 정죄보다 공감이, 지적보다 기다림이 먼저여야 한다. 교회는 그러한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다시 현실의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부모가 자녀와 눈을 마주치며 대화할 수 있도록, 젊은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좋아요’ 숫자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발견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 한다. 

분명한 것은 이 싸움은 쉽지 않다. 그러나, 다시 기도하고, 다시 일어나고, 다시 손을 내밀어야 한다. 주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듯이 우리 아이들도 포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