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18. 12:24ㆍ시험도, 일상도 기억이 답이다
하루 2시간 공부, 내 뇌는 과연 얼마나 받아들였을까

하루에 두 시간씩 공부를 한다고 말하면 대단하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사람도 있지만, 정작 그 두 시간이 얼마나 ‘진짜 공부’로 채워지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겨우 체력을 추스려 책상 앞에 앉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집중은 흐릿해지고 머리는 무거워진다. 눈은 책을 따라가는데 머릿속은 딴생각에 잠겨 있고, 1시간쯤 지나면 ‘지금 내가 뭘 보고 있었지?’ 하는 자괴감이 몰려온다. 분명 공부를 하긴 했는데 남는 게 없다. 이건 공부를 안 한 것도 아니고, 했다고도 할 수 없는, 그저 ‘앉아 있었던’ 시간이다.
그런데 포기할 수는 없다. 자격증 시험이 다가오고 있고, 하루 최소 두 시간은 공부해야 한다는 절박함은 여전하다. 그래서 나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무작정 오래 앉아있는 대신, 뇌가 버틸 수 있는 시간만큼만 집중해보자는 생각으로 ‘30분 공부 + 10분 휴식’이라는 구조를 짰다. 해보니 효과가 있었다. 짧지만 밀도 높은 30분은 훨씬 뇌에 오래 남았고, 10분의 휴식은 정보를 정리하고 리프레시할 수 있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세 번, 네 번을 반복하면 어느새 두 시간이 채워지지만, 느낌은 전혀 달랐다. 지쳐 쓰러지는 공부가 아니라, 기억이 남는 공부였다.
암기는 오감으로, 몸을 써야 오래 남는다
시간을 조절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더 바꿔야 했던 건 암기 방식이었다. 처음엔 무작정 읽고 쓰고 반복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외운 내용은 조금만 지나도 다 잊혀졌다. 머릿속에서 그냥 빠져나갔다. 그래서 시도한 게 감각을 동원한 암기였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항목을 외우고, 손으로 키워드를 짚으며 눈으로 응시하고, 입으로 소리 내어 반복했다. 시각, 촉각,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면 뇌는 이 정보를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더 오래 보관한다.
특히 순서대로 외워야 할 것이 많을 때는 손의 움직임과 목소리를 결합해 외우는 방식이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가리키고, 온몸이 정보를 기억하려 애쓰는 방식. 단순한 반복보다 훨씬 강력했다.
기억의 궁전, 뇌가 좋아하는 암기의 공간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기억의 궁전’을 활용했을 때 찾아왔다. 최근 나는 임상병리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정신과 관련된 10개 진단명을 외워야 했다. 건강염려증, 우울증, 히스테리, 반사회성, 남성성, 편집성, 강박, 조현병, 경조증, 내향성. 보기엔 짧지만, 이걸 순서대로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건 꽤 버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기억의 궁전을 만들었다.
나는 우리 집 거실을 무대로 삼았다. 가장 익숙하고,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릴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현관문을 열면 건강염려증이 약통과 체온계를 들고 신발장 위에 앉아 있다. 소파에는 우울증이 등을 굽히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고, 테이블 위에는 히스테리가 커피잔을 엎질러놓고 화를 내고 있다. TV 앞에는 반사회성이 무표정하게 화면을 응시하고 있고, 화분 옆에는 남성성이 다트판을 향해 과하게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커튼 뒤에는 편집성이 누군가를 의심하듯 고개만 내밀고 있고, 책장 옆에는 강박이 책을 정렬하며 각도를 맞추고 있다. 베란다 창가에는 조현병이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속삭이고 있고, 한쪽 구석엔 경조증이 눈을 반짝이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커튼 뒤 구석에는 내향성이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 있다.
이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걷듯 따라가며 순서를 외웠다.
이미지와 감정, 공간이 연결되면 정보는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다. 시험장에서 ‘그 단어 뭐였더라’ 하고 막막할 때, 나는 그 거실을 다시 걸었다. 순서대로 떠오르는 장면 속에서 진단명이 하나씩 튀어나왔다. 이건 단순한 암기가 아니라 ‘기억의 지도’다.
문장과 두문자로 기억에 갈고리를 걸어라
나는 여기에 트리거를 더했다.
‘건우 히반남편 강조내’처럼 말도 안 되는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이 기억의 갈고리 역할을 하도록 했다.
엉뚱한 문장일수록 오히려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는 게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암기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떠올릴 수 있어야 진짜다.
기억의 트리거, 이미지, 감각, 반복, 그리고 나만의 문장.
이 모든 것이 모여야 비로소 공부가 된다.
두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나에게 맞는 방식이 중요하다
공부는 오래 한다고 좋은 게 아니다.
하루 두 시간 중 단 30분이라도 온전히 남는 공부를 한다면 그게 진짜 공부다.
중년이 되면 기억이 예전 같지 않다고들 말하지만, 방법을 바꾸면 뇌는 다시 반응한다.
무작정 외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나만의 리듬과 기억의 방식을 찾는 순간, 잊히던 정보가 돌아오고, 공부가 다시 조금 재미있어진다.
나도 그 길을 찾는 중이다. 오늘도 다시 책을 펴고, 조용히 거실의 문을 열어 기억의 장면들을 하나씩 걸어간다. 그게 내가 기억을 붙잡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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