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의식의 문제가 아니다. 꺼내보는 훈련의 문제다

2025. 12. 18. 11:57시험도, 일상도 기억이 답이다

기억은 의식의 문제가 아니다 . 꺼내보는 훈련의 문제다

 

기억이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열심히 외웠는데, 막상 시험장에서 멍해진 적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그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분명히 봤고, 분명히 적었고, 녹음까지 해가며 귀에 익히려 애썼는데, 정작 필요할 땐 텅 비어버리는 그 순간. 나 역시 그랬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의식, 무의식, 전의식이라는 개념을 꺼냈다. 그리고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파딩은 그것을 더 간단히 정리했다. 우리가 깨어서 자각하고 있는 ‘현재의식’은 고작 5%에 불과하고, 나머지 95%는 드러나지 않는 ‘잠재의식’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보는 이 잠재의식 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걸 ‘꺼내보는 법’을 잘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나는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면서 이 점을 실감했다. 시험범위가 넓고, 외울 것도 많았다. 그래서 암기해야 할 내용을 녹음해서 차 안에서 듣고, 잠들기 전에도 틀어놓았다. 단순히 귀로 듣는 것 이상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멍하니 창밖을 보며 운전하던 중, 갑자기 녹음한 문장 하나가 머릿속에서 ‘툭’ 튀어나왔다. 그 내용이 중요한 포인트였고, 덕분에 다른 개념과도 연결됐다. 그때 알았다. 의식하지 않아도 반복해서 들려준 정보는,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었고, 생각보다 깊은 데서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음을.

기억은 단순히 ‘외우기’로 끝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을 무작정 외우는 단계, 그 의미를 이해하는 단계, 반복으로 암기하는 단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다시 꺼내보는 단계, 즉 인출의 과정까지가 한 세트다. 이 흐름이 빠지면, 기억은 머릿속에 들어와도 금방 빠져나간다.

나는 한때, 이해하지 못한 채 무조건 외우려 들었다. 책에 나온 대로, 문제집에 있는 대로 따라갔다. 그런데 잊히는 속도가 공부하는 속도보다 더 빨랐다. 오늘 외운 것을 내일 다시 외워야 했고, 어제 분명 기억났던 내용이 아침이면 사라져 있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다. 이해를 먼저 했다. 외워야 할 내용을 뜯어보고, 그 개념이 왜 필요한지,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지를 고민했다. 그러자 기억이 머물기 시작했다. 트리거 하나, 상황 하나만 떠올려도 관련된 정보들이 줄줄이 붙어 나왔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인출’하는 훈련이 필요했다.
특히 필기시험이 아닌 기사 실기시험을 준비하면서 절실하게 느꼈다. 필기시험은 반복해서 외운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커버가 된다. 하지만 실기에서는 단순한 암기로는 부족하다. 머릿속에 들어있다고 끝이 아니라, 그걸 꺼내는 속도와 정확도, 그리고 내 말로 풀어내는 능력이 함께 따라와야 한다.

그래서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책을 덮고 말로 풀었고, 요약 정리를 쓰고 다시 읽었다.
틀리면 다시 보고, 이해가 안 되면 설명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시험장에서 문제를 읽자마자 손이 먼저 움직였다. 기억이 아니라, 몸이 움직이는 느낌. 그건 단순한 반복의 결과가 아니라, 수십 번 꺼내봤던 정보가 주는 확신이었다.

기억은 외우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진짜 공부는, 꺼내는 데 있다.
기억은 숨어 있는 게 아니다. 생각보다 가까운 데 있다.
다만 꺼내보지 않으면, 영영 없는 줄 알고 지나치는 것뿐이다.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외운다고만 되지 않는다. 반드시 ‘꺼내는 연습’을 하자.
기억은 자극을 원하고, 반복을 먹고 자란다.
그리고, 그렇게 키운 기억은
당신을 시험장에서 지켜주는 가장 든든한 무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