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17. 07:12ㆍ생각을 말하다
중독에 빠진 자녀 앞에서, 부모는?

자녀가 게임에 깊이 빠져들었을 때 부모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진다. 처음엔 재미로 하는 줄 알았다. 심심해서, 친구들이 하니까 하는 줄로만 여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의 하루 중심에 게임이 놓이고, 부모의 걱정은 현실이 된다. 말은 줄어들고, 표정은 예민해지고, 가족과의 시간보다 화면 속 세계가 더 중요해 보일 때, 부모는 두려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흔들린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지금이라도 막아야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자녀의 중독만 보지 않고, 그 아이 전체를 다시 바라보는 일이다.
자녀의 중독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지 않는다. 처음 단계에서 아이는 게임을 놀이로 만난다. 성취감이 있고 재미가 있고, 현실보다 덜 긴장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아직 통제가 가능하다. 부모의 역할은 단속자가 아니라 안내자다. 이 단계에서는 상담이나 치료보다, 부모의 관심과 일상의 균형 회복이 더 중요하다. 게임을 무조건 제한하기보다 아이가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지,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발견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아이가 집중하는 능력,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끈기 있게 버티는 힘은 이미 강점으로 존재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게임이라는 한 공간에만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서면 부모의 걱정은 더 깊어진다. 아이는 게임이 없으면 허전하다고 말하고, 그 안에서 만나는 친구와 공간을 정서적 안식처로 삼는다. 이때 아이는 스스로를 조절하기 시작하지만, 감정은 이미 게임에 기대고 있다. 이 시점이 바로 상담과 코칭이 가장 효과적인 단계다.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부모와 아이 모두가 관계의 방향을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상담은 아이에게 “너에게 문제가 있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네 마음을 함께 들여다보자”는 안전한 신호가 되어야 한다. 코칭은 아이의 강점을 현실로 옮겨오는 작업이다. 게임 속에서 리더였던 아이에게 책임을 맡기고, 전략을 짜던 아이에게 현실의 목표를 세워주는 과정은 통제를 회복하는 데 큰 힘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세 번째 단계에 이르면 상황은 분명해진다. 아이 스스로도 멈추고 싶다고 말하지만, 게임이 일상의 모든 우선순위가 된다. 숙제, 식사, 수면, 관계가 무너지고 “나도 모르게”라는 말이 반복된다면, 이는 명백한 중독의 단계다. 이때 부모의 걱정은 더욱 커지고, 감정적으로도 지쳐간다. 이 단계에서는 부모의 노력만으로 버티기 어렵다.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개입은 통제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살리기 위한 책임 있는 선택이다. 치료는 아이에게 통제를 되찾게 하고, 부모에게는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준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단계에서 자녀의 강점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중독에 빠진 자녀는 문제가 있는 아이가 아니라, 자신의 강점을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하고 있는 아이다. 집중력, 몰입력, 탐구심, 관계를 맺는 능력은 중독의 원인이 아니라 회복의 자원이 될 수 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게임에서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강점을 다시 삶으로 연결해 주는 것이다.
결국 부모의 걱정은 사랑에서 비롯된다. 그 사랑이 두려움으로만 표현될 때 아이는 더 숨고, 이해로 표현될 때 아이는 다시 손을 내민다. 상담과 코칭, 그리고 치료는 단계에 따라 다른 역할을 한다. 놀이의 단계에서는 이해가 필요하고, 의존의 단계에서는 상담과 코칭이 필요하며, 중독의 단계에서는 치료가 필요하다. 이 흐름을 알고 접근할 때, 부모의 걱정은 통제가 아니라 회복을 향한 힘이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아이는 다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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