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라는 감정, 맡긴다는 것은 뭘까?

2025. 12. 14. 18:17생각을 말하다

염려라는 감정,  맡긴다는 것은 뭘까?

 

요즘 나는 내가 왜 이렇게 자주 염려하는 사람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마음은 늘 분주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미리 살아내듯 걱정한다. 잘못되면 어쩌지, 이 선택이 틀리면 어떻게 하지, 혹시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걱정’과 ‘불안’으로 구분해 설명한다. 걱정은 주로 미래의 문제를 머릿속으로 계속 반복하며 해결하려는 인지적 과정이고, 불안은 그 생각이 몸과 감정에까지 번져 긴장과 두려움으로 나타나는 상태라고 말한다. 생각은 멈추지 않고, 마음은 조급해지고, 몸은 쉬지 못한다.

흥미로운 점은 심리학에서도 염려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말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통제할 수 없는 일을 계속 통제하려 할수록 불안은 더 커지고, 마음은 더 쉽게 소진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게도 염려를 멈추지 못한다. 염려를 내려놓으면 무책임해지는 것 같고, 계속 생각해야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염려는 어느새 습관이 되고, 마음의 기본 상태가 되어 버린다.

빌립보서 4장 4절부터 7절 말씀을 읽다 보면, 이런 인간의 마음 상태를 하나님이 너무도 정확히 알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은 단순히 감정을 바꾸라는 요구가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쁨은 감정의 고조라기보다, 내가 누구 안에 있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태도에 가깝다. 심리학이 말하는 안정감의 근원이 ‘예측 가능성과 통제감’에 있다면, 성경이 말하는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 상황이 안정되지 않아도, 미래가 불확실해도, 주 안에 있다는 사실이 마음의 중심을 다시 세운다.

그래서 바울은 기쁨을 말한 뒤 곧바로 염려의 문제를 다룬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염려가 생기는 순간을 죄로 정죄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염려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인간의 마음을 잠식하는지 아시는 분의 초대처럼 들린다. 심리학에서는 불안을 ‘과도한 미래 집중’이라고 설명한다. 아직 오지 않은 일을 현재의 위협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경도 비슷한 통찰을 보여준다. 염려는 내일의 문제를 오늘의 짐으로 끌어와 스스로 짊어지는 태도다.

그래서 하나님은 염려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신다.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신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불안 완화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표현’과 ‘외부화’다. 마음속에서만 맴돌던 생각을 말로 꺼내고, 혼자 감당하지 않는 순간 긴장은 조금씩 낮아진다. 기도는 그와 비슷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기도는 단순히 감정을 털어놓는 것을 넘어, 그 문제의 주인을 하나님께 옮겨놓는 행위라는 점이다. 염려는 문제를 계속 내 안에 붙들고 있는 것이고, 기도는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선택이다.

여기에 감사가 함께 등장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심리학에서는 감사가 불안을 즉각적으로 없애지는 못해도, 사고의 방향을 바꾸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위협에만 집중하던 시선이 자원과 의미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감사 역시 상황을 부정하는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이미 일하고 계심을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한 고백이다. 아직 해결되지 않았어도, 맡겼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말씀은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평강을 약속한다. 이 평강은 문제의 소멸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이 지켜지는 상태를 가리킨다. 심리학이 말하는 불안은 주로 ‘생각의 통제 상실’과 연결되어 있다. 생각이 마음을 끌고 가는 상태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말한다.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할 때, 하나님이 대신 지켜주신다는 선언이다.

요즘 나는 염려가 올라올 때면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감정은 지금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이 문제는 정말 내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일일까, 아니면 하나님께 아뢰어야 할 일일까. 염려가 완전히 사라지는 삶은 아직 어렵지만, 염려를 기도로 옮기는 연습은 조금씩 가능해지고 있다. 불안이 신호라면, 기도는 그 신호에 대한 믿음의 응답이다.

염려는 내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착각에서 자라고, 평강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다시 인정할 때 찾아온다. 오늘도 마음이 불안한 누군가에게 이 말씀이 작은 쉼이 되었으면 좋겠다. 염려를 없애려 애쓰기보다, 염려를 들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