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23. 18:59ㆍ인간이 묻고 인공지능이 답하다
[연재12] 다시, 설교의 자리로

이 연재는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설교는 여전히 필요한가.”
이 질문은 설교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설교를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만이 던질 수 있는 물음이었다. 열 편의 글을 통해 우리는 설교의 위기를 진단했지만, 그 위기의 원인을 기술에서 찾지 않았다. 오히려 설교를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 설교자로 어떻게 서 있었는지를 되묻는 과정이었다.
설교의 위기는 AI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설교는 선포에서 설명으로, 증언에서 강의로 변해 왔다. 본문은 오래 머무는 말씀이 아니라, 빠르게 소비되는 재료가 되었다. 설교자는 콘텐츠 생산자처럼 행동하게 되었고, 청중은 공감 없는 설교에서 조용히 멀어졌다. 이 변화는 어느 한 순간의 실패가 아니라, 오랜 시간 누적된 방향 상실의 결과였다.
그러나 이 연재가 내린 결론은 분명하다. 설교는 사라지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설교자를 대체할 수 없고, 대체해서도 안 된다. 설교는 만들어지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을 함께 동행한 사람들의 증언이다. 회개할 수 없고, 무릎을 꿇을 수 없는 인공기술은 설교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설교의 주체는 언제나 성령과 설교자다.
우리는 다시 본문 앞에 서야 한다. 더 많은 자료가 아니라, 더 긴 머묾이 필요하다. 묵상과 기도가 필요하다. 본문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본문에 붙들린 사람이 될 때 설교는 살아난다. 기도 없는 설교는 결국 사람의 말로 끝나지만, 기도로 준비된 설교는 말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설교자는 먼저 말씀 앞에서 무너지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연재는 또한 교회와 목회자의 책임을 묻는다. 다음 세대는 설교를 듣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하며, 설교 교육은 기술 훈련이 아니라 영성 훈련이어야 한다. 교회는 설교자를 소비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설교자를 세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참된 설교자는 평가 속에서 길러지지 않고, 기도와 동행 속에서 세워진다.
이제 독자들에게 조심스럽게 바라는 것이 있다. 설교를 더 잘하려 애쓰기 전에, 설교의 자리를 다시 소중히 여겨 달라는 것이다. 설교를 비판하기 전에, 설교자가 서 있는 자리를 함께 지켜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설교자라면, 다시 하나님 앞에 서 달라는 요청이다. 기술을 배우는 시간보다, 무릎을 꿇는 시간을 잃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다.
설교의 미래는 새로운 형식이나 도구에 달려 있지 않다. 설교의 미래는 누가, 어떤 자리에서, 무엇을 의지하며 서느냐에 달려 있다. 이 연재가 설교의 해답을 제시했다기보다, 설교의 자리를 다시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되었기를 바란다. 설교는 끝나지 않았다. 다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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