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07] 기도 없는 설교는 망한다

2025. 12. 19. 19:05인간이 묻고 인공지능이 답하다

[연재07] 기도 없는 설교는 망한다

 

설교 준비는 흔히 ‘작업’으로 인식된다. 본문을 정하고, 자료를 찾고, 구조를 세우고, 문장을 다듬는 일련의 과정이 설교 준비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진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작업은 더욱 빨라지고 효율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설교가 힘을 잃는 지점은 바로 이 효율 속에서 시작된다. 설교 준비가 작업으로만 남을 때, 설교는 점점 생명력을 잃는다.

성경이 말하는 설교 준비는 작업이 아니라 기도의 연장선이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이다. 설교는 하나님께 무엇을 말할지를 정리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먼저 들은 것을 전하는 행위다. 그래서 설교 준비는 본질적으로 기도에서 시작해 기도로 이어진다. 이 흐름이 끊어질 때 설교는 단순한 말의 전달로 전락한다.

설교의 능력은 자료의 양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주해와 예화를 갖추어도, 기도의 깊이가 얕으면 설교는 쉽게 가벼워진다. 반대로 말이 서툴고 구조가 투박해도, 하나님 앞에서 오래 머문 설교는 묘한 무게를 지닌다. 이는 인간의 기술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다. 설교는 준비된 말보다, 기도 가운데 빚어진 말에 힘이 실린다.

성경 속 인물들은 언제나 기도의 자리에서 설교자로 세워졌다.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기도로 시간을 보내셨고, 열두 제자를 선택하기 전에도 밤을 새워 기도하셨다. 오순절의 베드로 역시 갑작스레 용기를 얻은 것이 아니라, 다락방에서 기도로 기다린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들의 말에 능력이 있었던 이유는 훈련의 결과가 아니라, 기도의 자리에서 먼저 하나님께 만져졌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문장을 만들 수 있다. 논리적인 흐름을 제시하고, 설득력 있는 표현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무릎을 꿇지 못한다. 말씀 앞에서 침묵할 수 없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고백할 수도 없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설교는 문장이 아니라, 기도 가운데 빚어진 사람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다.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먼저 만지신 사람이다. 그 만짐은 설교자의 말투를 바꾸기보다, 존재를 바꾼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달을 때, 설교자는 더 이상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씀 뒤로 물러나게 된다. 그때 설교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기도 없는 설교는 결국 사람의 말로 끝난다. 듣는 이에게 잠시 인상을 남길 수는 있어도,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갖기 어렵다. 인공지능 시대는 설교자를 더 분주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더 깊은 기도를 요구한다. 설교가 다시 힘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다시 무릎을 꿇는 일이다. 설교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