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26. 13:15ㆍ인간이 묻고 인공지능이 답하다
제5장. 교회와 신자의 진정성의 실천 방안
신앙의 위기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서 온다. 앞선 장에서 우리는 진정성이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숨기지 않고, 고백과 관계, 실천 속에서 드러나는 삶의 태도임을 확인하였다. 이 진정성은 단지 도덕적 정직성이나 감정의 솔직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전인격적 응답이다. 그러나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교회와 신자는 그 진정성을 실천하기 어려운 여러 환경에 놓여 있다.
AI가 설교를 대체하고, 앱이 기도를 자동으로 만들어주며, 온라인 콘텐츠가 신앙생활의 대부분을 대신해주는 시대. 이런 시대 속에서 신자들은 점점 더 신앙의 소비자가 되어가고 있다. 신앙을 드러내기보다 소유하려 하고, 실천보다 경험을 추구하며, 말씀을 따라 사는 것보다 좋은 콘텐츠를 골라 보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1. 교회가 지켜야 할 진정성의 자리들
(1) 설교로 선포된 말씀이 삶을 변화시키고 신앙고백으로 이어져야 한다.
설교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작업이 아니다. 설교는 선포된 말씀을 통해 삶이 변화되고, 나아가 신앙고백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은 AI가 만들어낼 수 있는 문장과 차원이 다르다. 진정성 있는 설교란, 말의 유창함이나 논리보다 설교자의 삶이 복음을 통해 전달되고 꽃 피우게 되는 것이다. 목회자는 설교중에 자신의 약함과 실패를 숨기지 말고, 말씀 안에서 그것을 직면한 경험을 성도와 나눌 때 진정성이 살아난다. 그 진정성이 인공지능 설교가보다 인간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설교는 정보전달만이 아니라 고백이어야 하며, 지식보다 하나님 앞에서 씨름한 흔적이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 2:4). 진정성 있는 설교는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설교이며, 설교자의 삶 속에서 먼저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다.
(2)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살아 있는 만남의 자리이다.
디지털 예배가 대중화되면서 많은 교회가 예배를 콘텐츠화하는 유혹에 직면해 있다. 화려한 편집, 세련된 영상, 감성적인 찬양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 중심에 하나님과의 만남이 사라질 때, 예배는 진정성을 잃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행위다. 어쩔 수 없어 그렇게 해야만 예배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현장예배에 참여해야 한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려지는 행위이다. 그런 점에서 예배의 진정성은 형식이 아닌 중심의 태도에서 결정된다. 주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참여하는 예배자가 있다. 진정성 있는 예배는 형식이 아닌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코로나19이후 온라인으로 혼자드리는 예배가 익숙한 세대들이 여전히 많다. 공동체 예배의 회복 없이 진정성도 회복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함께 드려지는 예배를 만들야 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만남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3) 관계회복이 일어나는 교회 공동체가 필요하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프로그램’은 넘치지만, 공동체성은 사라지고 있다. 진정성 있는 교회란, 정기적인 예배나 교육보다 서로의 삶에 진심으로 참여하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삶의 무게를 함께 지는 교회는 진정성이 살아 있는 교회다. 겉도는 인사나 형식적인 소그룹 운영을 넘어서, 삶과 삶이 맞닿는 교제가 회복되어야 한다.
복음은 말보다 행동으로 전파되며, 진정성은 사랑의 실천 속에서 증명된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9절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2. 목회자 자신이 먼저 진정성을 찾아야 한다.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완전함보다 정직함이 필요한 시대을 살아가고 있다. 목회자는 종종 교인들 앞에서 자신을 이상화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그러나 진정성은 완벽함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되, 하나님의 은혜로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삶을 보일 때 진정성이 드러난다. 그런점에서 목회자는 자신의 부족을 고백할 줄 아는 용기가 있어야 하며, 말씀 앞에서 먼저 무릎 꿇는 자로 설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목회상담과 돌봄이 프로그램이 아니라 삶과 신앙이 공존하는 일상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양육과 상담을 시스템화하고 매뉴얼화한다. 그러나 진정성은 표준화된 답변에서 나오지 않는다. 진정성은 고통의 자리에서 함께 울어주는 시간 속에 있다. 교회는 프로그램보다 사람이 먼저이며, 상담은 기술보다 공감이 먼저이다.
예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그의 집으로 직접 가셨다. 단지 말씀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함께 걷고, 함께 울며, 함께 가셨다. 이것이 돌봄의 진정성이다. 이것이야 말로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이다.
3. 하나님앞서 선 신자로서의 진정한 삶이 요구된다
(1) 예배자의 정체성이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
진정성 있는 신자는 주일에만 신앙인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이다. 예배의 진정성은 예배당에서의 태도뿐 아니라 예배 후의 삶에서 드러난다. 말씀을 듣는 자리보다, 말씀대로 살아내는 삶이 진정성을 입증하는 자리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2) 말씀 묵상을 통해 ‘깨달음’얻기보다 ‘따름’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현대인은 다양한 말씀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성은 얼마나 많이 들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순종했느냐에 달려 있다. 신자는 말씀을 따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묵상은 통찰이 아니라 결단과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시편 기자는 말한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 119:11)
4. 진정성은 교회의 미래다
기술의 발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AI는 설교를 더 잘 쓰게 될 것이고, 더 많은 성경지식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도 고백을 대신할 수는 없다.
진정성은 교회의 과거가 아니라, 교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본질적 기준이다. 교회가 진정성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콘텐츠를 쏟아내도 세상은 더 이상 교회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교회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 프로그램이나 더 많은 플랫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앞에 무릎 꿇는 진심이다. 진정성은 고백에서 시작되어, 관계 안에서 드러나며, 삶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그렇게 살아내는 교회와 신자들이 많아질 때, 우리는 세상 앞에 다시 “빛”과 “소금”으로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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