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할려고 해도 두려움 때문에 할 수 없어요

2023. 2. 6. 17:00중독이 묻고 성경이 답하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으로 인해 무언가를 할려고 해도 할 수 없어요.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사람들이 비난 할 것 같고 잘못되었다고 지적할 것 같은 마음이 들때가 많아요. 그럴때에는 생각과 행동이 멈추어 버릴때가 있어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래서 혼자 있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요.

성경은 두려움에 대해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공포의 대상아니라 창조주며, 구원자이기에 경외심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 외에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앞이나 질병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두려워 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달란트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두려움으로 인해 그 달란트를 땅 속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 있어서의 주인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해당 부분의 성경을 보면  ‘두려움’이란 단어가 4번 나옵니다. 그중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단어는 세 번,나오고  ‘두려워하라’는 말은  한번 나옵니다. 

26절에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말라.’ 
31절에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가 나옵니다.

여기서 두려워하지 말아야할 대상은 세상이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는 바로 유대 공회원들이나, 총독, 왕과 같은 박해자들을 가리킵니다.  반면에 28절에는 진정으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과연 그럴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여 지나치게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직장생활에서 학교생활에서 하나님보다 주변의 시선이나 사람의 시선에 더 많이 신경쓰고 있지 아는지 돌아보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립니다.(잠29:25)

잠언 29장 25절 말씀부터 살펴보면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려니와 누구든지 주를 신뢰하는 자안전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건강이나 재물, 자녀로 인해 힘들어 하거나 두려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두려움은 바로 사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고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다보니 실수하고, 넘어지고, 스스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신앙인이라면 어떻게 살아야할지 답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아 하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동을 해야한다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이익이나 성공을 위해서 사람들이 좋아하고 기뻐하는 일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 나오는 국회의원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법안을 상정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사람들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인해 올무에 빠져 믿음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올무에 빠지게 합니다.  올무는 “새나 짐승을 잡기 위하여 만든 올가미”를 가리키는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에 대한 두려움올무가 되는 것일까요?  사람의 말과 생각과 행동은 항상 변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상황이나 환경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른 변화에 의해 감정이나 두려움이 올무가 되어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군중이 두렵고 민란이 날까 두려워 살인자 바나바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 몰았습니다. 그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군중들에게 내어 줌으로써 죽게한 사람입니다. 그가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군중이었습니다. 바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에게 아말렉 족속을 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의 은혜로 아멜렉 족속과의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아멜렉 족속을 쳐서 멸하였으나 살진 짐승들을 죽이지 않고 끌고 왔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사울왕에게 찾아가 그의 불순종을 책망하게 됩니다.  이 때 사울왕은 뭐라고 변명하고 있습니까?

삼상 15장 24절에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울왕은 백성을 두려워했습니다.  백성들은 좋은 짐승을 죽이지 말자고 했습니다.   

사울왕은 백성들의 마음을 잃어 버리면 안돼라는 감정과 생각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에게는 인정받는 왕이 되었을 지라도 하나님께는 버림받게 되어 더 이상 왕이 되지 못하게 상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사람에 대해  두려움과 부담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두려움에 사로 잡히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부담스럽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살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구약성경 에스더서를 보면 모든 유대인이 진멸될 위기 앞에 놓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나아가 유대민족을 구하기 위해 왕께 아뢰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에 에스더의 첫 대답은 무엇이었을까요? 답은 ‘노(No)’ 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먼저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때를 위해 에스더가 왕비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냐”라는 말을 하게 되었을 때, 에스더는 그의 가려진 눈과 마음이 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와 사명을 깨닫은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결단과 함께  중보자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그때 에스더가 한 일은 백성들과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사람이 대해 두렵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명상을 통해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을 통제하려고 하지만 신앙인들은 기도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에스더는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다 맡기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독자여러분. 여러분 힘만으로는 두려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명령앞에서 왕과 사람들을를 두려워 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사람을 두려워했다면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사람이었기에 약속된 시간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문제가 생겼지만 문제만 바라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중  남자가 나면 모두 죽이고, 여자가 나면 살려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산파들은 애굽 왕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출 1:17“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이들을 살린지라.” 라고 하고 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경험하지 못했을 때에는 그의 형 아론을 보내라라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나약한 모세가 하나님께 붙잡히게 될 때  능력의 종.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불안하고 답답하십니까?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이 바로 기도해야 할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