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현장에서 사진치료를 선택한다는 것

2025. 12. 26. 11:39사진은 마음을 치료한다

임상 현장에서 사진치료를 선택한다는 것

 

상담실에서 사진이라는 매체를 꺼내는 순간, 대화의 결이 달라진다.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내담자는 이미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치료가 임상 현장에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사진이 설명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담자는 말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지만, 이미지를 마주한 순간의 감정 반응까지 통제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사진은 상담을 방해하는 방어를 깨뜨리기보다, 그 방어를 자연스럽게 비켜간다.

많은 내담자들은 자신의 문제를 잘 설명한다. 논리적으로 말하고, 원인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설명 속에는 감정이 없다. 사진치료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필요하다.  사진은 기억과 정서를 즉각적으로 호출한다. 어떤 사진 앞에서 오래 머무는지, 어떤 장면을 피하는지, 무엇을 보고 “모르겠다”고 말하는지 속에 내담자의 현재 상태가 담긴다. 사진은 진실을 폭로하지 않는다. 대신 내담자가 무엇에 반응하는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내담자는 “내 이야기”를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사진 속 장면에 대해 말한다. 문제는 더 이상 ‘나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보고 있는 어떤 이미지’가 된다. 이 거리는 감정을 다룰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불안과 저항을 낮춘다. 특히 불안이 높거나 방어가 강한 내담자에게 사진은 가장 안전한 장치가 된다. 

사진치료는 방어기제를 분석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법이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방어의 작동 방식을 드러낸다. 어떤 내담자는 사진을 설명으로만 채우고, 감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어떤 내담자는 특정 주제의 사진을 반복해서 고른다. 어떤 내담자는 밝은 사진만 선택하며 어두운 장면을 피한다. 이 모든 것은 성격을 규정하기 위한 정보가 아니라, 지금 이 사람이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다. 상담사는 이를 해석하기보다, 그 방식이 왜 필요했는지를 함께 탐색한다.

사진치료가 특히 잘 적용되는 대상은 언어가 방어로 작동하는 집단이다. 청소년은 질문을 평가로 느끼기 쉽지만, 사진 앞에서는 비교적 자유롭다. 성인은 말은 유창하지만 감정 접촉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사진을 통해 감정으로 내려갈 수 있다. 트라우마 경험이 있는 내담자에게도 사진은 말보다 안전한 통로가 될 수 있다. 기억을 설명하게 하지 않고, 감정의 가장자리에서 천천히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동에게도 사진은 유용하지만, 이 경우에는 놀이와 결합해 사용해야 발달적으로 적절하다.

임상 현장에서 사진치료는 매우 단순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치료자가 준비한 사진을 고르게 하거나, 내담자가 직접 찍어온 사진을 함께 본다. 중요한 것은 사진의 의미가 아니라, 사진 앞에서의 반응과 머무름이다. 상담사는 해석을 서두르지 않는다. “왜 이 사진을 골랐나요?”보다 “이 사진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드나요?”가 더 중요하다. 때로는 느낌을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사진치료는 말하게 만드는 치료가 아니라, 느껴도 괜찮은 상태를 만드는 치료이기 때문이다.

사진치료는 단일 이론에 있지 않다. 정신역동 이론은 사진을 상징과 투사의 매개로 설명하고, 인본주의 이론은 표현 그 자체의 치유적 가치를 강조한다. 신경과학은 이미지가 기억과 정서 회로를 활성화하는 과정을 설명해준다. 그러나 임상적으로 가장 중요한 근거는 이론이 아니라 경험이다. 사진이 상담실에서 실제로 내담자의 말을 바꾸고, 침묵의 질을 바꾸며, 감정의 접근 가능성을 넓힌다는 사실이다.

사진치료를 사용할 때 상담사가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사진을 평가나 진단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사진은 성격을 말해주지 않는다. 병리를 증명하지도 않는다. 사진은 단지 하나의 장면을 제공할 뿐이다. 그 장면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는 내담자의 몫이고, 그 과정을 안전하게 지켜보는 것은 상담사의 몫이다. 또 하나의 주의점은 속도다. 사진은 생각보다 빠르게 감정을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 사진치료는 언제나 내담자의 준비도와 조절 능력을 고려해 사용되어야 한다.

결국 사진치료의 힘은 사진에 있지 않다. 사진을 사이에 둔 관계에 있다. 말이 막힌 자리에서, 사진은 다른 문을 연다. 그 문을 통과할지 말지는 언제나 내담자가 결정한다. 임상 현장에서 상담사로서 내가 사진치료를 선택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 사람이 지금 자기 자신을 조금 덜 방어하며 만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사진은 그 통로가 되어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