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1. 21:27ㆍ사진은 마음을 치료한다
사진을 활용한 사진심리학을 통한 내담자이해와 상담

게슈탈트 심리학은 인간이 세상을 단순히 ‘보이는 정보’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의미 있는 형태를 구성하고 전경과 배경을 구분하여 스스로의 세계를 조직하는 존재임을 말한다. 이러한 관점은 사진을 활용한 상담—사진심리학—에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사진을 촬영하거나 고르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사람은 자신의 내면세계와 관심의 초점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진촬영의 과정에서도 게슈탈트의 전경–배경 개념은 핵심적이다. 사람은 카메라를 들고 장면을 바라볼 때, 전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무엇을 ‘전경’으로 만들 것인지 먼저 선택한다. 어떤 이는 인물을 전경으로 하고 배경을 흐리게 처리하려 하며, 또 어떤 이는 공간 전체를 하나의 의미 있는 구조로 보고 인물보다 배경을 강조한다. 이러한 선택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초점의 문제이며, 무엇을 의미 있는 요소로 해석하는지—즉 무엇에 마음이 붙들리는지—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관계 중심적인 사람은 사진에서 표정, 눈빛, 거리감 같은 인간적 요소를 전경으로 두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내면적 불안이 큰 사람은 혼란스러운 배경이나 강한 대비의 구조에 더 오래 시선을 두며 그 배경을 사진의 중심으로 삼기도 한다. 전경은 카메라 렌즈가 아니라 마음이 만들어낸다.
상담 장면에서도 내담자가 전경과 배경을 어떻게 선택하는지는 중요한 심리적 정보가 된다. 포토테라피나 사진상담에서는 “어떤 장면을 전경으로 보느냐”를 통해 내담자의 현재 심리 상태를 파악한다. 동일한 사진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밝은 빛에 주목하고, 어떤 사람은 작은 그림자에 먼저 반응한다. 어떤 사람은 풍경 속 외로운 사물 하나를 중심으로 보지만, 또 다른 사람은 전체적 조화를 전경으로 해석한다. 이 과정에서 전경–배경이 전환되는 순간, 즉 처음에는 배경처럼 보이던 요소가 내담자의 말 한마디로 갑자기 전경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 전환은 종종 내담자의 무의식적 감정이나 억압된 경험을 드러내는 지점이 된다. 상담자는 이 변화를 따라가며 내담자가 무엇을 중심으로 살아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배경으로 밀어내며 살아왔는지를 탐색한다.
또한 게슈탈트의 형태의 법칙들—근접성, 유사성, 연속성, 폐쇄성 등—은 사진 해석 과정에서 내담자의 의미 만들기 방식과 깊은 연관을 가진다. 사람은 사진 속에서 어떤 요소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거나, 서로 연결되지 않은 부분을 이어 붙여 의미를 완성하려 한다. 상담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인식 과정이 내담자의 심리적 세계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근접성의 법칙은 가까이 있는 요소를 하나의 의미로 묶는 경향을 설명하는데, 내담자가 가족사진에서 누가 누구와 가까이 서 있는지를 강조하거나, 거리감이 있는 사람만을 별도로 보거나 하는 방식은 실제 관계 경험의 반영일 수 있다. 유사성의 법칙도 마찬가지로, 내담자가 사진 속 비슷한 색이나 표정에 강하게 반응하는 경우, 그것은 그가 현재 중요하게 지각하고 있는 감정적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때가 있다.
게슈탈트 심리학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형태를 완성하려는 경향”이다. 사람은 모호한 이미지를 볼 때 그 안의 빈 공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채우며 전체를 해석하려 한다. 사진상담에서는 이러한 반응이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흐릿한 실루엣을 보며 어떤 사람은 위협적인 형태를 떠올리고, 어떤 사람은 안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같은 사진이라도 내담자가 무엇을 ‘완성’시키는지에 따라 그가 현재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거나 기대하는지, 어떤 세계관을 유지하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때 상담자는 사진을 통해 내담자 마음속 미완성된 경험이나 감정이 어떻게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되며, 그 지점이 심리적 개입의 문이 된다.
결국 게슈탈트 심리학은 사진을 단순한 시각 기록으로 보지 않는다. 사진은 보는 사람의 심리적 구조가 반영된 하나의 ‘형태’이며, 그 안에서 전경과 배경의 선택, 형태의 구성, 의미의 완성은 모두 마음의 움직임을 드러낸다. 사진촬영은 외부 세계를 기록하는 행위이지만 동시에 내면을 투사하는 과정이고, 사진을 해석하는 일은 외부 이미지 속에서 자신의 심리적 세계를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진심리학은 사진을 상담의 도구로 사용할 때 내담자가 스스로 만든 시각적 언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말하게 하고, 사진 속 전경–배경의 구조를 통해 지금 무엇이 삶의 중심이며 무엇이 배경으로 밀려나 있는지를 탐색하게 한다.
게슈탈트는 결국 “당신이 무엇을 중심으로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진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솔직한 답을 보여주는 도구이며, 상담자는 사진을 통해 내담자가 어떤 형태로 세상을 보고 의미를 구성하는지를 이해한다. 사진 속 장면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마음의 구조를 비추는 거울이며, 게슈탈트의 원리는 그 거울 속 메시지를 읽어내도록 돕는다.
1. 사진을 통해 내담자 이해와 사진심리학
사진은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다. 상담 장면에서 사진은 언어보다 진실하고, 때로는 기억보다 정직한 심리적 단서를 제공한다. 내담자는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만, 사진 속 장면을 통해서는 상대적으로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낸다. 그래서 사진심리학은 상담사에게 내담자의 내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넓은 창을 제공한다.
사진을 활용한 상담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내담자가 ‘무엇을 찍었는가’보다 ‘왜 그것을 찍었는가’이다. 내담자가 카메라를 들고 어떤 대상을 전경으로 삼는 순간, 이미 그의 마음은 선택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가족사진을 찍으면서도 특정 인물만을 반복적으로 촬영하는 내담자는 그 인물과의 관계가 심리적 중심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풍경을 촬영한다고 해도, 공허한 공간이나 먼 수평선, 텅 빈 자리만을 자주 찍는다면 그것은 내담자가 현재 경험하는 정서적 거리감이나 고립감을 반영할 수 있다. 사진은 피사체 자체보다 심리적 초점을 드러내는 매개가 된다.
상담사는 사진 속에서 내담자가 무엇을 ‘전경’으로 보았는지를 세심하게 관찰한다. 이는 단순한 형태 분석이 아니라 내담자의 심리적 우선순위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내담자가 어두운 그림자나 배경의 작은 사물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는 현재 주변의 위협이나 불안을 전경으로 인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상담 장면에서 내담자가 먼저 언급하는 것이 밝은 빛, 넓은 하늘, 따뜻한 표정이라면 그것은 심리적 회복력이나 희망성과 연결될 수 있다. 사진은 “내담자가 지금 마음속에서 무엇을 가장 크게 보고 있는가”를 슬그머니 알려준다.
또한 내담자가 사진을 설명하는 방식도 상담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동일한 사진을 보더라도 어떤 내담자는 세부 묘사에 집착하고, 또 다른 내담자는 전체 분위기에 대해 먼저 이야기한다. 세부에 집착하는 경우 불안이나 통제 욕구가 내면에 자리잡고 있을 수 있고, 전체를 먼저 보는 내담자는 정서적 연결이나 관계적 의미를 더 크게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상담사는 내담자가 사진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조직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며 심리적 구조를 파악하게 된다.
사진을 선택하는 과정 또한 심리적 의미를 담고 있다. 내담자에게 “당신에게 중요한 사진을 하나 골라보라”고 요청했을 때, 어떤 내담자는 가족사진을 꺼내며 관계 이야기를 시작하고, 어떤 사람은 오래된 물건을 찍은 사진을 통해 잊고 살던 삶의 상실감을 이야기하게 된다. 심지어 사진이 아닌 빈 화면이나 흔들린 사진을 선택하는 내담자도 있다. 이러한 선택은 상담사가 말로 들을 수 없는 정보, 즉 내담자의 무의식적 선호·회피·두려움·바람을 반영한다. 사진은 종종 내담자가 말하지 못하는 감정을 대리적으로 말해준다.
상담사는 사진 속 상징성을 해석할 때 조심해야 한다. 사진은 객관적 자료가 아니라 ‘내담자의 세계관이 투사된 장면’이기 때문이다. 상담사는 해석자가 아니라 동행자의 입장에서 “이 사진을 보았을 때 어떤 감정이 드나요?”, “이 장면에서 특별히 마음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나요?”와 같은 열린 질문을 통해 내담자가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돕는다. 사진상담의 핵심은 해석이 아니라 의미 구성이다. 내담자가 사진을 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때, 그의 마음속 구조가 자연스럽게 조직되고 드러난다.
사진은 또한 내담자의 심리적 시간성을 드러내는 특별한 도구다. 예를 들어, 내담자가 과거의 사진을 들고 오며 “나는 왜 그때처럼 살 수 없을까요?”라고 말한다면, 그 사진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현재의 상실과 좌절을 상징한다. 반대로 미래를 담은 사진—여행지, 새로운 도전, 꿈꾸는 공간—에 집중하는 내담자는 심리적으로 회복의 방향성을 찾고 있을 수 있다. 상담사는 이러한 시간적 의미를 탐색하며 내담자의 성장 서사를 함께 재구성한다.
사진은 결국 내담자의 마음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상담사는 이 거울을 통해 내담자가 무엇을 중심으로 붙들고 있으며, 무엇을 배경으로 밀어내고 있는지를 살피게 된다. 사진 속 전경–배경의 구조는 종종 내담자의 삶에서 중심이 되는 주제와 주변으로 밀려나 있는 감정들을 그대로 비춘다. 상담에서 사진을 활용할 때, 치료적 대화는 자연스럽게 깊어지고, 내담자는 스스로의 감정을 안전한 방식으로 탐색할 수 있게 된다.
사진심리학은 결국 “사진을 어떻게 찍는가”가 아니라 “사진이 내담자의 마음을 어떻게 말하게 하는가”의 문제이다. 상담사는 사진을 통해 내담자가 말하지 못한 이야기, 스스로도 미처 인지하지 못한 감정, 그리고 삶의 중심에 놓인 심리적 이슈들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은 단순히 순간을 기록하는 도구를 넘어, 내담자의 마음을 안전하게 드러내는 심리적 통로가 되며, 상담사는 그 통로를 따라 내담자의 세계에 조심스럽게 들어가 그가 스스로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2. 포토테라피 상담 프로토콜과 질문리스트
사진을 활용한 상담, 즉 포토테라피는 내담자가 자신의 내면을 보다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드러내도록 돕는 특별한 접근이다. 사진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과 기억을 간접적으로 담아내기 때문에, 상담자는 사진을 통해 내담자의 마음에 접근할 수 있는 또 다른 문을 갖게 된다. 이러한 상담을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진 그 자체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 내담자에게 어떤 의미를 생성하는지를 함께 탐색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포토테라피는 체계적인 프로토콜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 가며 내담자의 심리적 장면을 이해해 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상담의 시작은 언제나 사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안내에서 출발한다. 내담자가 사진을 활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상담자가 사진 사용의 목적과 의미를 설명하고, 사진은 평가나 진단의 도구가 아니라 감정과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끌어내기 위한 매개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렇게 신뢰가 형성되면 내담자는 과거 사진이든, 휴대폰 사진첩 속 이미지든, 또는 방금 촬영한 사진이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장면을 자유롭게 선택하기 시작한다. 이 선택 과정을 통해 내담자의 심리적 초점이 이미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떤 내담자는 가족사진을 꺼내들고, 어떤 사람은 풍경 속 고요한 공간을 선택하며, 또 어떤 이들은 어두운 사진이나 흐릿한 사진에 유독 끌리기도 한다. 선택 자체가 곧 내담자의 마음이 전경으로 두고 있는 주제의 반영이 된다.
사진이 선택되면 상담자는 해석을 서두르기보다, 먼저 사진 속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도록 요청한다. “이 사진에서 무엇이 보이나요?”, “어디에 시선이 먼저 머무나요?”와 같은 질문을 통해 내담자의 관찰을 열어 주고, 사진 속에서 무엇이 전경이 되고 무엇이 배경으로 밀려나는지를 자연스럽게 인식하도록 이끈다. 이 과정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내담자가 자신의 관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첫 단계이며, 게슈탈트 심리학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탐색이다.
이후 상담자는 사진이 불러일으키는 내담자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탐색한다. 어떤 사진은 내담자의 기쁨을 즉시 드러내지만, 또 어떤 사진은 오래된 슬픔이나 미묘한 불안을 건드리기도 한다. 사진은 언어보다 빠르게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에, 내담자는 사진 속 장면의 특정 부분을 보며 가슴이 답답해지거나, 갑자기 편안함을 느끼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떠오르기도 한다. 상담자는 그 감정을 포착하며 “이 사진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사진 속 어느 부분이 특별히 마음을 건드리나요?”와 같이 감정과 장면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묻는다. 이러한 대화는 내담자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감정의 층위를 드러내는 과정이 된다.
점차 내담자는 사진과 자신의 삶을 연결하기 시작한다. 상담자는 이 흐름을 따라 사진의 개인적 의미가 무엇인지 탐색한다. “이 사진은 지금의 당신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 같나요?”, “이 장면이 당신의 삶의 어느 순간을 떠올리게 하나요?”와 같은 질문을 통해 내담자는 사진을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의 일부로 재해석하게 된다. 가족사진 속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은 실제 가족관계에서의 소외감을 상징하기도 하고, 빛이 들어오는 창문 사진은 내담자의 회복 욕구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 단계는 사진이 내담자의 무의식적 서사를 수면 위로 올리는 시점이다.
상담이 깊어질수록 사진은 내담자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도구로 변한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사진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사진을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어떤 의미가 될까요?”, “이 장면을 다시 찍는다면 어떤 모습을 담고 싶나요?”와 같은 질문은 내담자가 고착된 해석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한다. 때로는 내담자가 과거의 상처를 담은 사진 속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현재의 자신이 그에게 말을 건다는 상상적 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재구성의 과정은 내담자가 자신의 서사를 다시 쓰는 치료적 경험이 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사진을 통해 드러난 통찰을 내담자의 현재 삶에 연결한다. 사진이 보여준 감정, 상징, 메시지 가운데 어떤 것을 앞으로의 삶에 기억하고 적용하고 싶은지 탐색하면서 상담을 마무리한다. 내담자는 사진 속 장면을 다시 떠올리며 자신을 지탱해 줄 문장이나, 기억하고 싶은 감정을 찾아낸다. 사진은 이제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
포토테라피의 모든 과정은 결국 “사진이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내담자가 사진을 통해 무엇을 말하게 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상담사는 사진 속 장면을 통해 내담자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가며,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안전한 방식으로 탐색하도록 돕는다. 사진은 말보다 진실하고, 때로는 기억보다 정확하게 내담자의 세계를 비춘다. 그렇기 때문에 포토테라피는 상담 현장에서 내담자의 깊은 내면을 여는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된다.
3. 사진치료와 사례분석
사례01 - 무기력감과 대인관계에서의 거리감을 호소하는 내담자
내담자 A는 32세 직장 여성으로, 최근 반복되는 무기력감과 대인관계에서의 거리감을 호소하며 상담실을 찾았다. 그녀는 “딱히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삶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고 표현했다. 세 번째 상담에서 사진을 활용해 자신의 감정을 탐색해보자는 제안을 하자, A는 잠시 고민하다가 휴대폰에서 한 장의 사진을 꺼내들었다.
사진은 늦은 오후의 공원 풍경이었다. 하지만 초점이 맞아 있는 것은 앞의 나무나 벤치가 아니라, 멀리 비어 있는 산책로였다. 산책로는 길게 이어져 있었고, 빛이 사라지는 하늘 아래 작은 그림자처럼 겨우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진 속 전경은 명확하지 않고, 오히려 배경처럼 보이는 텅 빈 길이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듯했다.
사진을 보며 상담자가 느낌을 묻자 A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용한 목소리로 “저 길이 꼭 저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어서 설명을 덧붙였다. “가끔은 앞으로 가야 한다는 건 아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길이 계속 있으니까 걷는 것뿐이고, 목적지는 없어요.” 상담자는 ‘산책로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내적 움직임’을 확인하며, 사진 속 장면이 A의 현재 정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탐색했다.
A는 평소 관계에서 갈등을 피하려는 경향이 강했고,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상담자는 “사진에서 사람의 모습이나 구체적인 대상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떤 의미로 느껴지나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요즘 제 주변에도 사람이 없어요. 회사 동료랑 지내는 것도 지치고… 그래서인지 저 장면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혼자인 게 익숙해져서요”라고 말했다.
이 말 속에는 고립을 힘들어하면서도 동시에 고립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정서적 양가감정이 담겨 있었다. 사진 속 인물이 없는 이유가 우연이 아니라, 내담자의 ‘관계 회피’와 ‘정서적 거리두기’가 반영된 결과일 가능성이 높았다.
상담자는 이 장면을 재구성하도록 돕기 위해 “만약 이 사진에 당신이 원하는 어떤 요소를 하나 추가할 수 있다면, 무엇을 넣고 싶나요?”라고 질문했다. A는 잠시 생각하더니 “따뜻한 불빛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벤치 하나에 조명이 들어오는 그런 장면이요”라고 말했다. 상담자는 그 말을 심리적 언어로 확장해 보았다. “지금의 삶에도 누군가가 당신을 비춰주는 따뜻한 조명이 필요하다고 느끼시는 걸까요?” A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를 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걸 바라면 제가 약해지는 것 같아서…”
이 지점에서 사진은 단순한 공원 사진이 아니라, 내담자의 ‘욕구와 두려움이 동시에 담긴 상징적 장면’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사진 속 텅 빈 산책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방향을 잃어버린 현재의 삶’을, 사라져가는 빛은 ‘정서적 소진’을, 그리고 추가하고 싶다는 조명은 ‘관계적 연결 욕구’를 드러내고 있었다.
상담 후반부에서 상담자는 “이 사진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A는 사진을 오래 바라본 뒤 “길 위에 서 있지만, 누군가의 불빛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답했다. 상담자는 이 문장을 세션의 핵심 메시지로 삼고, 앞으로의 상담 목표를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욕구를 표현하는 법’으로 재설정하였다.
세션이 끝날 즈음 A는 사진을 다시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길이 그냥 끝없이 비어 있는 줄 알았는데… 누군가 함께 걸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어요.” 사진은 이미지를 넘어 내담자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고, 그 안에서 A는 자신이 그동안 외면해온 감정과 욕구를 조용히 마주하고 있었다.
사례2 - 불안감을 가진 내담자
내담자 B는 28세 여성으로, 최근 몇 달 동안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해지고 작은 일에도 쉽게 깜짝 놀라며, 출근길마다 “오늘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고 호소하며 상담실을 찾았다. 그녀는 “실제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났는데도 불안해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상담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B는 주변을 살피는 듯한 눈빛을 보였고, 의자에 앉기 전에도 잠시 머뭇거리며 가방끈을 쥔 손에 긴장이 잔뜩 들어 있었다. 상담자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자, 이내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최근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이 불안을 촉발한 계기였다. 하지만 그녀의 불안은 단순히 업무 부담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B는 “작은 실수도 큰 문제로 번질 것 같고, 누군가 실망할까 봐 늘 걱정돼요. 그냥… 늘 마음이 긴장해서 편해 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상담자는 그녀가 상황 자체보다 ‘상상 속 위험’을 더 크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음을 파악했다.
일상생활에서도 불안은 여러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철을 타면 숨이 막힐 것 같아 다음 역에서 내려 바람을 쐬었고, 회의 시간에는 심장이 빨리 뛰면서 머리가 하얘지는 순간이 자주 있었다. 그녀는 이러한 불안이 언제 찾아올지 예측할 수 없어 일상에서 회피 행동이 늘어났고, 결국 주말에도 약속을 잡기보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B는 “사람들과 만나면 재밌는 줄 아는데, 요즘은 괜히 불편해질 것 같아서 나가기 싫어요”라고 말했다.
상담자가 불안이 가장 심해지는 순간을 묻자, B는 멈칫하다가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나는 지금 위험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이는 전형적인 신체화된 불안 반응이자 **과잉경계(hypervigilance)**의 특징이었다. 또한 그녀는 “사람들이 나를 평가할까 봐 두려워요. 아니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결국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거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이는 부정적 자동사고와 자기비난적 사고 패턴이 불안을 강화하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상담자는 사진을 활용한 포토테라피 기법을 시도해보며 그녀의 불안을 이미지로 연결해 보았다. B는 휴대폰에서 어두운 터널 사진을 꺼내 보이며 “이 사진이 지금 제 마음 같아요. 앞이 보이지 않아서 더 불안하고, 빨리 끝났으면 하는데 계속 길게 느껴져요”라고 말했다. 상담자는 이 사진이 그녀의 불안 구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불안을 ‘이겨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이해해야 하는 신호’로 재정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세션 말미에 B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불안이 사라지면 좋겠다고만 생각했는데, 오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제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냥 막연한 감정인 줄 알았는데… 이유가 있었네요.” 상담자는 그녀가 회피하고 억눌렀던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긍정적 변화의 출발로 보았다.
이후 상담은 불안 상황에서 나타나는 자동사고를 재구성하고, 회피 대신 작은 직면을 시도하는 행동 계획을 통해 진행될 예정이다. B는 여전히 불안하지만, 이제는 두려움의 정체를 조금씩 이해하고,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안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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