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03] 설교의 위기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2025. 12. 15. 18:32인간이 묻고 인공지능이 답하다

설교의 위기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오늘 많은 이들은 설교의 위기를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 변화에서 찾는다. 그러나 설교가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은 AI의 등장보다 훨씬 이전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강단의 말은 점점 권위가 잃어 가고 있었다. 설교는 여전히 이어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문제는 설교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설교가 변해 버렸다는 데 있다. 그것이 설교자의 문제인지 회중의 문제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설교는 어느 순간부터 ‘선포’라기보다 ‘설명’에 가까워졌다. 말씀을 전하는 자리에서, 말씀을 해설하는 자리로 조금씩 이동해 왔다. 자신이 만난 예수에 대한 증언은 줄어들고 강의는 늘어났다. 성경 본문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보다 분석 대상이 되었고, 설교자는 하나님의 대사가 아니라 해설자가 되었다. 이 변화는 의도적이라기보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성경 속 설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 그 자체였다.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교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부인했던 그 예수를 증거했다.  바울 역시 아덴에서 철학적 논쟁을 벌이기보다, 자신이 만난 부활의 예수를 전했다. 설교는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만남의 신앙 고백이었다. 듣는 이들은 논리보다 그 만남의 진실성에 반응했다. 설교자는 자신이 만난 예수, 자신속에 있는 예수을 말씀을 기반으로 증거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작성한 설교에는 진정한 만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가 만난 그 예수를 전해야 한다. 그래야 설교의 능력이 나타나고 변화가 일어난다.

오늘의 청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완벽한 설명보다 설교자의 삶에서 묻어나는 진정성에 더 민감하다. 말씀이 삶을 통과했는지, 설교자가 먼저 그 말씀 앞에서 변화가 되었는지에 대해 먼저 느낀다. 설교가 아무리 정교해도, 설교자의 삶과 분리되는 순간 설득력을 잃는다. 결국 청중은 설교를 통해 정보를 얻기보다, 말씀 앞에 선 한 설교자의 태도를 본다. 설교자의 삶이 바로 설교이다. 단지 매주, 매 강단마다 선포되는 설교를 통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이다.

그래서 설교의 위기를 진단할 때 기술보다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설교자의 내적 상태다. 자료가 부족해서 설교가 힘을 잃은 것이 아니다. 도구가 없어서 설교가 메말라진 것도 아니다. 설교자의 영성이 약해질 때, 설교는 자연스럽게 설명으로, 강의로, 안전한 말로 변해 간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무너지는 경험이 줄어들수록, 설교는 점점 다루기 쉬운 말이 된다.

설교 위기의 뿌리는 기술이 아니라 영성의 약화에 있다. 인공지능은 이 위기를 만들어낸 존재가 아니라, 이미 진행되고 있던 변화를 드러내는 거울에 가깝다. 이 시대가 설교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더 뛰어난 기술이 아니라, 다시 말씀 앞에 서는 용기다. 설교는 새로운 도구로 회복되지 않는다. 설교자는 다시 하나님 앞에 서야 하고, 그 자리에서 다시 말해야 한다. 

설교자가 말씀앞에서 변화되어야 청중이 변화가 일어난다. 설교자가 말씀앞에 바로서지 않는데 청중이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