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14. 16:13ㆍ인간이 묻고 인공지능이 답하다
[연재02] 인공지능 시대, 목회자가 먼저 던져야 할 질문 - 설교는 여전히 필요한가
인공지능이 설교문을 만들어 주는 시대가 도래했다. 본문을 입력하면 구조가 잡히고, 문장은 매끄럽게 다듬어진다. 짧은 시간 안에 그럴듯한 설교 원고가 완성된다. 이 변화 앞에서 많은 목회자들이 마음 한편에 불편한 질문을 품는다. 과연 설교는 여전히 필요한가. 더 정확히 말하면, 설교자는 여전히 필요한 존재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러나 설교의 위기는 기술의 등장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설교는 점점 듣히지 않는 말이 되어 가고 있었다. 집중력은 짧아졌고, 교회 안팎을 가득 채운 콘텐츠 속에서 설교는 하나의 선택지로 밀려났다. 문제는 설교의 자리가 줄어든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무엇으로 이해하고 있는가에 있다.
설교를 정보 전달로 이해하는 순간, 설교는 더 잘 정리된 강의와 비교당할 수밖에 없다. AI가 제공하는 방대한 자료와 논리적 문장은 설교자를 쉽게 위축시킨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설교는 애초에 정보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말씀을 책으로만 주시지 않고, 언제나 사람을 통해 전하셨다. 모세는 웅변가가 아니었고, 예레미야는 말이 부족하다고 고백했으며, 바울조차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입술을 사용하셨다.
설교는 하나님 앞에 먼저 서고, 만나고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이며 선포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가 이스라엘 앞에 섰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피하려 했던 요나가 결국 니느웨로 향했다. 설교는 준비된 문장이 아니라, 먼저 부르심 앞에 응답한 삶에서 흘러나온다. 이 지점은 어떤 기술도 대신할 수 없다. 인공지능은 문장을 만들 수 있지만, 부르심 앞에서 무너질 수는 없다. 회개의 눈물을 흘릴 수 없고, 말씀 앞에서 자신의 삶이 찔리는 경험을 할 수도 없다.
인공지능 시대의 설교는 더 잘 만들어진 말이 아니라, 더 분명한 정체성을 요구한다. 설교자는 콘텐츠 생산자가 아니라 말씀을 증거하는 자이다. 강단은 발표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의 힘은 멋진 미사어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설교의 힘은 화려한 표현이 아니라, 말씀 앞에 선 목회자의 삶과 기도와 영성에서 흘려 나온다.
만약 교회가 이 질문을 외면한다면, 설교는 점점 기술 경쟁 속으로 밀려날 것이다. 더 빠르고 더 매끄러운 설교를 만들어 내는 데는 성공할지 모르지만, 말씀의 무게는 가벼워질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을 정직하게 붙든다면, 설교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본질적인 모습으로 회복될 것이다.
이 연재는 설교의 종말을 선언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람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믿음 위에서,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 설교자는 여전히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설교자는 언제나 하나님앞에서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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