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마음의 허기이다

2025. 8. 31. 10:03생각을 말하다

인간의 삶을 돌아보면, 누구나 한 번쯤 설명하기 어려운 허기(虛飢)를 경험한다. 배가 고프다는 뜻의 허기가 아니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공허, 아무리 가져도 부족한 결핍, 그 목마름 때문에 더 많은 것을 갈망하는 내적 허기를 말한다. 누군가는 돈으로, 누군가는 권력으로, 또 다른 이는 쾌락과 중독으로 그 허기를 채우려 애쓴다. 그러나 채워지기는커녕 더 깊은 공허와 허망으로 빠져드는 것이 인간의 현실이다.

성경은 일찍이 이 문제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전도서는 이렇게 말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솔로몬은 세상의 지혜, 부, 향락, 업적을 다 누려 보았지만 결국 결론은 “헛됨”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풍요로웠지만, 마음 깊은 곳의 허기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음을 고백한 것이다.

 



허탄한 것에 마음을 두는 사람들


허기진 영혼은 허탄한 것에 마음을 둔다. 마치 사막에서 물을 찾지 못해 신기루를 좇듯, 헛된 것에 집착한다. 도박에 빠진 사람은 ‘한 방’을 꿈꾸지만, 그것은 허망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음란물에 중독된 사람은 순간의 쾌락으로 공허를 잊으려 하지만, 끝내 더 큰 허기를 낳는다. 스마트폰, 게임, 술, 니코틴—all of these are 마치 모래성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지만 파도 한 번이면 무너지고 만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탄식한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렘 2:13). 하나님이라는 생명의 근원을 버린 채, 자신들의 욕망으로 웅덩이를 판 것이다. 그러나 그 웅덩이는 터져 있었고, 결코 물을 담아낼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허망한 것을 좇는 인간의 모습이다.


결핍에서 비롯된 중독


심리학적으로 볼 때, 중독은 결핍에서 출발한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안전에 대한 갈망,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채워지지 않을 때, 사람은 대체물을 찾는다. 어린 시절 부모의 무관심을 경험한 이는 사회적 인정에 목을 맨다. 실패의 두려움에 눌린 이는 알코올 속에서 도피처를 찾는다. 결핍은 곧 공허를 낳고, 공허는 곧 중독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원리를 성경은 이미 오래 전부터 드러내고 있다. 사마리아 여인은 다섯 번이나 남편을 바꾸었고, 지금 함께 사는 사람조차 남편이 아니었다(요 4:18). 그녀는 결핍된 사랑을 남자들로 채우려 했지만, 여전히 목마른 여인이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요 4:13-14). 인간의 결핍을 채우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뿐이라는 선언이다.


왜 중독은 허망한가?


중독은 처음에는 달콤하다. 그러나 곧 쓰디쓴 열매를 맺는다. 탐욕에 이끌린 유다는 은 삼십에 예수를 팔았지만, 끝내 그 허망함을 깨닫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마 27:5). 아합 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탐하다가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왕상 21장). 세상은 끊임없이 “이것이 너를 채워 줄 것”이라 약속하지만, 그 결과는 허무와 파괴일 뿐이다.

예수님의 비유 속 탕자는 유산을 탕진하고 허랑방탕한 생활로 마음의 허기를 채우려 했다. 그러나 끝내 돼지 먹이를 먹고 싶은 지경까지 몰렸다. 그는 깨달았다. 아버지의 집만이 진정한 만족의 자리임을. 돌아온 탕자를 향한 아버지의 품은 바로 우리의 허기를 채우는 하나님의 사랑의 상징이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길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 빈 공간을 갖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무엇으로 채우느냐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가지라, 더 누리라, 더 취하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공허를 채우실 수 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 63:1).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에, 하나님이 아닌 그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다. 금전도, 권력도, 쾌락도, 중독도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갈망. 그 갈망은 곧 하나님을 향한 본능적 목마름이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 마음의 허기를 하나님께로


허기진 사람은 허탄한 것을 바라고, 허망한 곳에 마음을 둔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채워지지 않은 결핍이 있다. 그 결핍을 채우려다 사람은 중독에 빠지고, 결국 더 깊은 공허를 경험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요 6:35).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는 영원히 만족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음의 허기는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헛된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생수의 근원이신 주님께 나아갈 때, 우리의 허기는 참된 만족으로 변한다. 그때 우리는 더 이상 허망한 중독의 노예가 아니라, 충만한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자유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