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18. 15:32ㆍ생각을 말하다
눈 오는 날, 나를 만나러간다.
이동현
창밖을 보니 함박눈이 조용히 쏟아지고 있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눈송이들이 공중에서 춤을 추듯 빙글빙글 돌다 이내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눈송이 하나하나가 바닥에 닿을 때마다 작은 숨소리를 내며 쌓인다. 거리는 금세 하얗게 덮였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고 적막하다. 그러나 내 마음은 그 고요함 속에서도 쉴 새 없이 과거를 헤맨다. 눈 내리는 창밖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본능처럼 마음 한 켠 깊은 곳에서 오래된 기억들을 꺼내어 본다.
어릴 적 나는 눈이 오면 단순히 기뻤다. 아니, 기쁨 그 이상이었다. 눈은 나에게 겨울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었고, 축제였다. 아침에 눈이 온다는 소식만 들려와도 나는 이불 속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 밖을 확인하곤 했다. 밤새 온 동네를 하얗게 물들인 눈을 보는 순간, 나는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장갑도, 목도리도 챙기지 않고 허둥지둥 밖으로 달려 나갔다.
골목 어귀에는 이미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야! 눈싸움하자!”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우르르 몰려 눈덩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코끝이 빨개지고 손끝이 얼얼할 정도로 추운 날이었지만, 우리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서로 눈덩이를 던지고, 넘어지고, 때로는 장난으로 눈밭에 서로를 밀어 넘어뜨리며 깔깔 웃었다. 어느새 골목은 작은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눈이 쌓인 언덕 위에서 누가 더 멀리 굴러가나 내기도 했고, 집 앞마당에는 어김없이 커다란 눈사람이 만들어졌다.
동네 강아지들도 빠질 수 없었다. 녀석들은 우리 주위를 신나게 뛰어다니며 꼬리를 흔들었다. 눈밭을 이리저리 헤집다가도, 우리가 만든 눈사람 옆에 누워 몸을 비비거나, 던진 눈덩이를 물려고 쫓아가곤 했다. 우리는 웃으며 강아지를 쫓기도 하고, 품에 안고 눈밭 위를 구르기도 했다. 그렇게 강아지들과 함께 뒹굴다 보면 어느새 온몸은 눈으로 흠뻑 젖었고,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지만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는 그저 ‘눈’이 내린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눈 덮인 세상은 마치 우리가 매일 걷던 골목을 다른 세상처럼 변신시켰다. 회색빛 도로가 하얗게 변했고, 나무 위에는 눈꽃이 피었다. 우리는 그 신비로운 변화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며 온몸으로 즐겼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눈은 더 이상 내게 설렘의 대상이 아니었다. 군 시절, 강원도 철원에서의 겨울은 눈과의 전쟁 그 자체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쌓이는 눈을 치우기 위해 새벽이면 어김없이 기상벨 소리에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군장과 삽을 들고 눈밭으로 나가면, 이미 밤새 쌓인 눈은 발목 위까지 올라와 있었다. 얼어붙은 땅 위에서 삽으로 눈을 퍼내다 보면 손끝은 금세 얼어 붙었고, 발가락마저 저릿했다.
동이 트기 전 칠흑 같은 어둠 속, 쉴 새 없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나?”라며 원망 섞인 말을 중얼거렸다. 눈을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었다. 무겁게 젖은 군장과 땀에 젖은 속옷, 그리고 얼어붙은 군화를 신고 다시 훈련장으로 향해야 했던 겨울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그때부터였다. 내게 눈은 더 이상 낭만이 아니었다. 그저 치워야 할 짐이었고, 피로와 고된 노동의 다른 이름이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눈을 볼 때면 가장 먼저 피곤함부터 느낀다. 출근길, 쌓인 눈을 보며 저절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발밑은 미끄럽고, 신발은 눈에 젖어 축축해진다. 거리마다 버스와 지하철이 멈췄다는 뉴스가 떠돌고, 나는 하염없이 정류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초조해진다. 예전에 실제로 폭설로 인해 버스도 지하철도 모두 멈춘 적이 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한겨울, 나는 얼어붙은 거리를 두어 시간 넘게 걸어야 했다. 눈길을 조심조심 걸으며 중심을 잃을까 긴장했던 그날의 기억은 내게 씁쓸한 겨울의 다른 얼굴을 알려주었다.
눈은 이제 내게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차라리 비가 오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미끄러운 길 위에서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하고, 겨우 도착한 회사에서는 축축하게 젖은 바지와 신발을 벗어야 했던 날들. 그때마다 나는 어린 날의 겨울과 지금의 겨울이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겨울은 여전히 특별하다. 자녀들과 함께했던 눈 내리는 날들의 기억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나가 손을 맞잡고 하얀 세상으로 들어서면, 그때만큼은 어린 시절의 나로 되돌아간 듯했다. 아이들이 “아빠! 같이 눈사람 만들자!”라고 외치면, 나는 그저 웃으며 아이들과 함께 눈덩이를 굴렸다.
눈밭 위에서 아이들은 누가 더 크게 웃나 시합이라도 하듯 해맑게 웃었다. “아빠, 우리 눈 위에서 수영하자!”며 눈밭에 누워 팔다리를 쭉 뻗고 몸을 흔들며 만들어낸 ‘눈천사’ 위에서 뒹굴던 아이들의 웃음은 내 가슴을 따뜻하게 채웠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그 순간만큼은 하얀 겨울 속에서 다시 행복한 소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한 눈 내리는 날들은 내게 또 다른 의미의 겨울을 남겼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묻어나는 순수함 속에서 나는 그동안 잊고 지낸 감정을 다시금 마주할 수 있었다.
눈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내리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달라져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저 눈이 좋았다. 눈을 기다렸고, 눈을 맞으며 뛰어놀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눈을 피하고 싶어 하고, 그 무게를 먼저 생각한다. 눈이 변한 것이 아니다. 변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책임과 의무, 그리고 삶의 무게가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순수했던 감정을 덮어버렸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는 또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조용히 내리는 눈 속에서 나는 나를 돌아본다. 유년의 눈밭에서 뛰놀던 소년, 군 시절 새벽 어둠 속에서 삽을 들었던 청년, 그리고 출근길에 눈밭을 걷던 어른의 모습까지. 모든 시절의 내가 그 창밖 어딘가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오늘 밤, 나는 마음속으로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창밖, 어린 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나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할 것이다. “그래, 너를 아직 잊지 않았어.” 그리고 다시 눈을 맞으며 웃던 그때처럼, 나도 잠시나마 세상의 무게를 내려두고, 순수했던 나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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