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내 안의 시인을 깨우는 문학치료

2019. 8. 17. 10:50스크랩자료

[퍼온글] 내 안의 시인을 깨우는 문학치료

이 봉 희 (나사렛대)

 

문학 치료 워크숍에 처음 참석한 A, B 두 분은 모처럼 쉬는 주말, 먼 곳에서 찾아오느라 지쳐서인지 짜증과 회의로 가득했다. 마음속에서 술렁이는 불편한 감정 에너지들을 흘려보내고 안정을 찾아주기 위해 필자는 선 그리기로 워밍업을 시작했다. 종이 위에 아무 생각 없이 마구 감정을 풀어놓는 낙서는 세션이 시작되기 전 마음을 안정시키고 긴장감을 푸는 데 효과적이다. 하지만 낙서를 하고 나니까 기분이 좀 나아졌느냐는 질문에 두 분은 내가 왜 이곳엘 왔지? 그럴 가치가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이걸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밥은 언제 먹지? 오늘 결혼식에 가야 하는데 괜히 여길 왔나?”라고 말씀하시면서 여전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셨다. 그분들의 지친 마음과 육체적 피로감을 알아차린 필자는 준비해 간 프로그램을 바꿔야겠다고 직감하고 이번에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몸을 탐구하는 명상과 그림 저널쓰기를 시도했다. A는 가슴과 머리에 검은색으로 불편함을 그렸고 직장에서의 과중한 업무와 관계에서 지친 마음을 표현했다. 필자는 다시 준비해 간 시 대신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내 몸에 있다는 내용의 시를 급히 찾아서 함께 나누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이 아직도 나와 함께 있다./ 발톱 사이사이에 끼인 유치원 시절, 내 등뼈 뒤/ 그늘 속에 추방당한 고교 시절, 내 넓적다리를 따라/ 줄줄이 매달린 베냇적 그림들/ (중략) / 내가 가보았던 장소마다/ 내 주머니에서 떨어뜨려 놓은 조약돌/ 내가 사랑했던/ 모든 이들은 내 폐 속에서 숨을 쉬고/ 내가 한 모든 일이 아직도/ 심장에서 두뇌로/ 그리고 척추로 이어지는 긴 길을 따라/ 여행하고 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내 불완전한 몸 안에 숨어 있으니/ (중략) /축복인지 저주인지,/ 내가 알고 지낸 모든 것이 나와 함께 있어/ 나는 그것들을 기억해내려고 애를 쓰고 있다.”(“내가 아는 모든 것이A. 크리스트만. 필자 역)

시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구절을 서로 나누는 시간, B“‘내가 가보았던 장소마다 내 주머니에서 떨어뜨려 놓은 조약돌이라는 구절이 맘에 와 닿는다.”라고 한다. 왜 하필 그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는지 묻자 그는 무관심하게 그냥 이 구절이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동화책을 생각나게 해서요라고 대답했다. 모든 다른 참여자들과 시에서 느껴지는 서로의 경험을 나눈 후, 필자는 모든 분들에게 글쓰기를 위한 몇 가지 유도 문구(글쓰기 프롬프트)를 주면서 혹시 내가 헨젤과 그레텔처럼 길을 잃었다고 느낀다면 그 이야기로 글쓰기를 해보셔도 좋고요라는 말도 살짝 추가했다. 그러자 뜻밖에 B가 놀라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참여자들이 쓴 시나 글은 본인이 원치 않으면 비밀에 부치기 때문에 B가 어떤 글을 썼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글을 써가면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무심코 그 구절이 동화책 내용과 같아서 눈에 띄었는데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자신이 헨젤과 그레텔처럼 항상 집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말을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치료사는 그가 찾는 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도록 유도했고 그는 자신이 찾는 이란 감정이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치료사는 다음 세션에 과 관계된 시와 영화 등 문학 자료를 준비했고 몇 번의 모임 후 B는 첫날 말한 자신이 찾는 집의 의미와 다른 것을 또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왜 왔지? 그럴 가치가 있을까?”라고 말했던 A는 시의 한 구절구절이 자신의 이야기여서 놀랍다고 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쓴 글을 모두에게 공유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어린 시절 받은 깊은 마음의 상처와 그때부터 생긴 육체적 증상(완치되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다시 반복되는 육체적 증상)으로 지금까지 고통 받고 있었다(그 증상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밝히지 않음). 그는 그 고통스러운 사건을 지난 20여 년간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고 몸을 탐구하는 그림 저널을 쓰고, 시를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서 본인도 모르게 처음으로 털어놓게 되었다면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문학 치료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학 치료에서 사용되는 문학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목소리를 이끌어내는 촉매 역할을 한다. 이 두 사람은 시를 읽고 자기 내면의 반응을 탐구하면서 내가 길을 잃고 집을 찾는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사실을 통찰해내거나, 20년간 숨어있던 상처 입은 어린아이에게 목소리를 주고 그 고통을 애도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은 시인의 말대로 내 불완전한 몸속에 숨어서 기억되기를 기다리는 절실한 이야기를 찾게 된 것이다. 혼자서 시나 소설, 영화 등 문학작품을 읽고 접하면서 감동을 받는 것과 달리 문학 치료에서는 참여자에게 적합한 문학 작품을 선정하고 그것을 통해 참여자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상호작용으로 전문 문학 치료사/촉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이봉희, 2009, “자아를 찾는 문학치료에서 발췌)

1. 문학치료란 무엇인가?

1) 문학치료의 개념

문학치료란 영어로는 포이트리테라피(Poetry Therapy), 비블리오테라피(Bibliotherapy), 저널테라피(Journal Therapy)를 모두 포함한 말로 참여자와 치료사 사이의 치료적 상호작용을 위해 문학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 문학치료는 문학을 촉매로 참여자(내담자)와 훈련받은 문학치료사 간에 이루어지는 상호작용(interaction)으로, 참여자에게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을 배울 수 있게 하고, 또 다른 관점에서 그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하여 줌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올바른 자아인식에 이르게 하는 과정(process)이다.(하인즈와 하인즈베리)

이 과정에서 치료사(촉진자)는 참여자/그룹의 성격과 치료목표에 따라 선별한 시, 소설, 저널, 영화, 다큐멘타리, 그 외 여러 형태의 문학을 촉매로 치료적 대화와 토론을 사용하여 참여자를 돕는다.

미국의 문학치료는 NAPT(National Association for Poetry Therapy, 전미문학치료학회)가 미국 전역의 문학치료 관련 연구, 자격관리, 문학치료사 교육 등을 주관하는 유일한 통합기관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오랜 전통과 권위를 가지고 문학치료의 모델과 사례들 제시해왔으므로 그 모델로 문학치료를 정의해본다.

NAPT에서 문학치료사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NFBPT(전미시/문학치료협회)는 문학치료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포이트리테라피(poetry therapy), 저널치료(journal therapy), 비블리오테라피 (bibliotherapy), /저널치료(Poetry/Journal Therapy), /문학치료 (poetry/bibliotherapy) 이 모든 용어는 성장과 치료를 촉진시키기 위하여 문학과 글쓰기를 매개로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포이트리테라피라는 말이 사용될 때 그것은 협의의 시()치료가 아니라 위에 말한 모든 것, 즉 문학, 저널/글쓰기 등 모든 문학치료적 방법을 포함한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문학치료를 뜻한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개인의 성장과 치료를 돕기 위해서 시와 저널, 그리고 다른 다양한 형태의 문학을 사용하고 있다.

문학치료의 정의에 포이트리테라피, 비블리오테라피라는 용어 외에 새롭게 저널치료(Journal Therapy) 보다 더 적극적으로 포함시키고 있는 것은 그 만큼 문학치료의 과정에서 내담자의 글쓰기, 특히 자유로운 표현적 글쓰기인 저널(일기)의 중요성이 입증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포이트리테라피(poetry therapy)는 협의의 시치료가 아니라 상호작용 문학치료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도 명시한다. 문학치료가 읽기 중심의 독서치료(비블리오테라피)와 쓰기 중심의 창작치료(포이트리테라피), 또는 시치료로 나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문학치료의 역사상 여러 용어가 서로 보완하며 만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용어의 차이점이 아니라 서로의 공통점과 장점을 살리는 일이다.

포이트리테라피는 문학 중에서도 특히 은유, 심상, 리듬, 등 시적 요소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미국에서는 현 NAPT의 전신이 시치료학회(APT)였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며 비블리오테라피(bibliotherapy), 저널테라피라는 말과 함께 모두 문학치료를 뜻하는 말이다.

문학치료에서 말하는 문학은 여러 장르의 상상의 문학, 이야기, 신문기사, 노랫말, 연극, , 영화, 비디오, TV드라마, 일기 등 생각과 느낌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언어를 표현매체로 사용한 광의의 문학을 말한다. 이때 문학은 인쇄된 작품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또 다른 매체인 비디오, 영화, 등은 시각, 청각적 이미지를 첨가하여 개인의 깊은 내면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언어의 환기적 기능을 더욱 증가시킬 수 있다. 글로 쓰인 텍스트의 효과를 강화시키기 위해 무 작위적으로 선택된 언어들, 단편적인 문구들이나 음악, 이미지, 사진, 미술들이 사용될 수 있으나 문학치료에서 말하는 문학텍스트는 언어로 되어있어야 하며 내적 일관성과 통일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하인즈와 하인즈베리: p.13.)

문학은 치료를 위한 촉매(catalyst)의 역할을 하게 되며 치료 경험은 문학치료사, 시인, 또는 시/문학치료의 수련을 거친 전문가의 촉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것이 책과 독자/환자 간의 독서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던 종래의 비블리오테라피(reading bibliotherapy)가 오늘날의 상호작용 시/문학치료(interactive biblio/poetry therapy)와 다른 점이다.

문학치료에서 사용하는 문학은 예술적/문학적 가치나 위대함이 아니라 '깨달음과 자아발견을 위한 도구로서의 가치'에 중점을 둔다. 예술로서의 문학의 초점이 문학 자체에 있다면 치료를 위한 문학은 그 초점이 참여자 개개인의 반응과 자기표현을 통한 성장에 있다.

2) 문학치료의 역사

. 개관

고대 테베의 도서관 정문에는 "영혼을 치유하는 곳"이라는 글이 걸려 있었고 스위스의 한 중세 대수도원 도서관에도 "영혼을 위한 약상자"라는 의미의 글이 새겨져있었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문학이 가지는 치료의 기능을 보여주고 있다. 치료와 성장을 위해 시와 노래가 쓰인 예는 이미 원시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종교적 제의에서 무당이나 제사장들은 개인이나 부족의 건강과 안위를 위해서 시나 노래를 읊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최대한 즉각적인 효과를 위해 파피루스에 글을 써서 그것을 물(액체)에 녹여서 환자가 마시게 하기도 하였다. 기원전 1030년경에는 다윗이라는 소년의 음악이 사울 왕 속의 야수를 잠재우기도 하였다.

의술과 예술이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신화 속 아폴로 신이 의신(醫神)이면서 동시에 시/예술의 신인 것을 봐도 알 수 있으며 테살리 지역의 의사로서 명성이 높았다는 아스클레피우스는 아폴론의 아들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한 신화에 보면 오세아누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말은 병든 마음을 치료해주는 의사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최초의 문학치료사는 1세기 소라누스라는 로마 의사였다. 그는 조증환자에게는 비극을 우울증환자에게는 희극을 처방하였다고 전해진다.

수세기 동안 시와 의학간의 관계는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미국의 경우 1751년 벤자민 프랭클린이 세운 최초의 병원인 펜실베이니아 병원에서 정신질환 환자들에게 치료 보조수단으로 책읽기와 글쓰기를 사용하고 그들의 글을 출판한 것이 최초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미국 심리치료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자민 러쉬(Benjamin Rush)는 음악과 문학을 효과적인 보조수단으로 치료에 사용하였으며 환자들이 쓴 시()를 자신들이 만든 신문인 일루미네이터(The Illuminator)에 싣기도 하였다.

한편 의학전문인들도 예술과 치료의 중요한 관계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프로이드는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시인이라고 했고 아들러(Adler), (Jung), 아리에티(Arieti), 라이크(Reik)들도 시인들이 과학자의 길을 열어주었다고 말하였다. 심리극(싸이코 드라마)이라는 용어로 유명한 Moreno는 심리시(싸이코 포이트리)라는 용어도 제안하였다. 1960년대에 오면 집단 심리치료의 발달과 더불어 심리치료사들이 시치료를 함께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문학치료는 재활, 교육, 도서관학, 창조예술, 상담, 등의 분야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부흥하기 시작하였다.

그런가 하면 정신의학전문가들은 첫째, 문학()의 환기작용과 둘째, 글쓰기의 힘이라는 문학의 치료적 힘을 확인하여주었다. 문학, 특히 시는 그것을 읽는 사람의 내면에서 연상 작용을 일으키고 의식적 무의식적 기억과 생각을 환기시켜 이끌어 내는 강렬한 힘이 있다. 또한 내담자가 다른 사람이 쓴 문학()에 대한 개인적 반응을 글로 쓰든 아니면 자신만의 경험과 감정을 글로 쓰든 글쓰기가 놀라운 치료의 힘이 있다는 것이다.

. 용어의 역사로 본 문학치료의 역사

비블리오테라피(Bibliotherapy)

비블리오테라피는 그리스어 테라페이아(therapeia), 춤과 노래, , 연극 등과 같은 표현예술을 통해 간호하고, 병을 고치다라는 의미와 비블리오(biblio, /문학)의 합성어로 문자 그대로 치료를 위해 책과 문학을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영혼을 치료하고 소생시키는 문학의 힘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Poetics)에서 카타르시스 이론을 통해 이미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비블리오테라피라는 말이 모든 종류의 책을 통한 자기개발 활동을 뜻하는 포괄적인 용어는 결코 아니라고 하인즈와 하인즈베리는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문학치료가 정확히 어디에서 그 치료과정이 이루어지는 것인지에 대한 오해와 혼동(그리고 심지어 반대의견)에 기인하고 있다.(10)”고 말한다.

일단의 학자들은 치료과정이 독서행위(reading) 자체에서 생겨난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도서관 사서들이 독자에게 책을 선정하고 권해주는 전통적인 역할에서 비롯되었다. 비블리오테라피라는 말은 1916Samuel Crothers가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1920년대 초, 정신과 환자들의 치료를 도울 수 있는 책을 선택하여 권장하는 특별한 일의 가치를 깨달은 도서관 사서들은 그 특별한 일을 지명하기 위해 비블리오테라피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사서들이 사용한 초기 비블리오테라피는 칼 메닝거의 인간의 정신(The Human Mind)과 같은 구체적 정보를 주는 책들 뿐 아니라 책의 주인공이 독자에게 모본이 되거나 경고가 될 수 있는 가상의 소설들을 사용하는 것임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였다. 의사들은 병원 도서실의 사서와 긴밀히 협력하였는데 이는 사서들이 환자들 뿐 아니라 그들의 모습이 그려진 문학작품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이후 수많은 사서들, 상담사들, 국어교사들, 사회복지사들이 개개인의 정서적 성장이나 위기에 대한 통찰력을 가져다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권장 도서 목록을 작성해왔다. 사서들은 책을 처방하는 일에비블리오테라피라는 말을 계속하여 사용하고 있으나 당시 그들이 실행하는 비블리오테라피처방된 책과 환자(참여자)와의 직선적 관계로 오늘날의 문학치료와 달리 학작품에 대한 환자의 개인적인 반응에 대한 계획된 토의가 포함되지 않았다.(http://poetrytherapy.org)

따라서 하인즈와 하인즈 베리는책 처방은 문학치료가 아니라 독서요법(reading bibliotherapy)라고 구별하여 정의한다.(10-11) 이러한 구분은 독서행위가 치료효과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교사나 사서, 상담사들에 의해 처방/권장된 적합한 책이 성장과 치료에 필요한 감정적 반응을 환기시키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결코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요점은 그 경우 치료과정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문학()과 독자 간에 일어나는 것이지 문학치료의 경우처럼 문학치료사의 개입, 의도된 토론과 인도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라는 점을 명확히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

포이트리테라피(Poetry therapy)

포이트리테라피라는 용어는 문학 중 특히 시의 치료적 힘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작되었다.

1928년 시인이며 약사이며 변호사인 Eli Greifer는 심리치료사인 Smiley Blanton박사와 함께 시의 교훈적인 메시지가 치료효과가 있음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그라이퍼는 시의 힘에 대한 믿음과 열정을 평생의 사업에 쏟은 시치료의 선구자로서 뉴욕에 치료 시 갤러리(Remedy Rhyme Gallery)’를 열었다. 그는 시의 치료적 힘을 증명하기 위하여 1950년대 크리드모어 주립병원에서 [포임테라피] 그룹을 시작하였으며 이것이 오늘의 "포이트리테라피"의 시작이 되었다. 1959년 그는 정신치료사인 Jack Leedy박사와 Sam Spector박사를 슈퍼바이저로 컴버랜드 병원에서 최초로 시치료 그룹을 이끌었다. 1969년 리디는 동료들과 함께 [시치료학회(APT)]를 창단하게 된다. APT에서 잭 리디와 함께 동역한 시인이며 교육자인 M. Morrison박사는 오늘날 문학치료 자격증제도의 기초를 닦았다. 그 외에도 시치료는 L.A.Lerner가 창설한 시치료연구소를 비롯하여 미국 전역에서 시인, 심리학자, 상담자, 목회자, 의사, 간호사, 복지사 등의 참여로 연구와 교육과 실습을 통해 더욱 확대되어 오늘의 NAPT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라이퍼와 블랜톤이 시치료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할 때 그들은 정신적 질환자가 단순히 시를 읽는 행위만으로는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치료사가 환자와의 의사소통에 시를 사용하여 그들이 반응하도록 도와주어야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는 점이다. 즉 포이트리테라피(시치료)는 그 용어가 처음 사용될 때 이미 치료사의 촉진활동이 개입되어 내담자/환자가 자신의 문제와 욕구를 탐구하도록 돕는 것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상호작용 문학치료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하인즈와 하인즈베리, p.12)는 것이다.

1980APT시치료학회와 미국 전역에 있던 관련 학회나 연구소들은 NAPT로 통합되었고 그 후 포이트리테라피는 문학치료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 되면서 60년대까지 비블리오테라피로 더 많이 불리던 문학치료가 포이트리테라피라는 말로 더 많이 쓰이게 되었다. 또한 NFBPT(전미시/문학치료협회)를 창단하여 기부금모금과 공인문학치료사와 문학치료전문가들(CAPF, PTR)의 교육프로그램을 전담하고 있다.(CAPF는 종래의 CPT의 새로운 지칭으로 의학전문인이 아닌 문학치료사를 일컫는 말이며 PTR은 종래의 RPT로 의료보건전문가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취득할 수 있다.) 1981년 이래 NAPT는 매년 미국 전역을 돌면서 5일간의 학회와 총회를 열고 있으며 미국 각지와 외국에서 수많은 상담사, 시인, 작가, 교사, 교수,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참석하여 시, 영화, TV프로그램, 노래, 동작과 시/저널쓰기, 등 다양한 문학매체를 통한 워크숍을 통해 치료체험과 정보교환, 학술교류를 하고 있다.

상호작용문학치료(Interactive Biblio/Poetry Therapy)

상호작용문학치료는 포이트리테라피, 비블리오테라피, 그리고 저널테라피를 모두 포함하는 말로 현재 미국에서 문학치료를 일컫는 최종의 정의이다.

초대 NAPT의 회장이었던 Arleen Hynes1974년 워싱턴 D.C.의 세인트 엘리자베스병원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문학치료 교육 프로그램을 설립한 사람으로 작가인 Mary Hynes-Berry박사와 함께 1986문학치료: 상호작용의 과정(Biblio Therapy- Interactive Process: A Handbook)을 출판하여 상호작용으로서의 문학치료의 개념을 확실히 하게 되었다.

그 후 문학치료는 문학을 사용하여 참여자와 치료사(촉진자)사이의 상호작용, 즉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치유의 과정이라고 명확히 정의되었다.

저널치료(Journal Therapy)

저널(journal)이란 일기라고 번역되겠지만 기존의 일기(다이어리)와 달리 자아성장과 문제해결을 목적으로 개발한 성찰적 글쓰기 기법이다. 1960년대 뉴욕의 정신치료사인 Ira Progoff가 환자들의 치료에 사용하면서 시작된 저널테라피는 문학을 매개로 하지 않는 글쓰기를 통한 심리치료수단으로 시작되어 미국 전역에 보급시켰고 NAPT의 회장을 역임한 상담사이며 작가인 캐슬린 애덤스는 1990년 이후 문학치료에 저널치료를 보다 적극 도입시키게 되었다. (애덤스 1990, 1998)

한 편 James Pennebaker교수는 문학치료사가 아닌 심리학자로서 20년 이상의 실험을 통해 글쓰기가 면역체계에 미치는 긍정적 결과에 대한 연구를 함으로써 문학치료가 정신적 건강뿐 아니라 육체적 건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대표적인 학자가 되었다.(1997, 2004) 그의 업적은 문학치료에 과학적인 근거를 제공하면서 글쓰기치료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는 점이다. 페니베이커의 연구는 의학계에서도 관절염, 천식, 그 외 암환자, 우울증 환자 등 여러 분야에 긍정적인 결과를 인정하여 글쓰기의 치료적 힘에 대한 커다란 공헌을 해오고 있다.

글로 쓰는 표현들은 문학치료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나만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것은 자아확립의 과정이며 결과적으로 보다 확실하고 긍정적인 자아이해와 새로운 통찰, 그로인한 문제해결과 육체적, 정신적 건강개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3) 문학치료의 목적

문학치료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것이 자기개발을 위한 문학치료이든 임상적 문학치료이든 모든 다른 치료사들의 목표와 같다. 즉 환자/참여자의 전인적 성장을 도와서 자신을 너그럽게 수용하고, 보다 아름답게 자신을 개발하여 자존감을 회복하고 향상시킴으로써 내재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내적 능력과 현실 적응기능을 증진시킨다.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면

내적 이미지와 감정에 반응, 표현하는 능력 개발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이해력 증진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타인을 사랑할 수 없다

인간관계에 대한 자각 증진 그 누구도 섬이 아니다.”

현실감각 발달

문학치료는 결국 현실/실존적 문제를 직면하며 그에 근거한 사고를 하도록 돕는다. 어떤 의미로 모든 문학치료시간은 현실감각 개선을 그 목표중의 하나로 염두에 두어야한다고 하인즈와 하인즈 베리는 말한다.

4) 문학치료의 원리

문학치료는 어떤 원리로 이루어지며 문학의 어떤 요소들이 치료로 이끌 수 있는가?

. 상호작용

크라코우에 사는 어떤 랍비가 3번의 꿈을 꾸었다. 꿈에서 한 천사가 나타나 리보브나로 가라고 지시하면서 그곳에 가면 궁전 앞, 다리 근처에 보물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랍비가 리보브나에 도착했을 때 그는 그 이야기를 성의 파수병에게 해주었다. 그런데 그 파수병은 자신도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꿈에서 천사는 그에게 크라코우의 랍비 집으로 가면 그 곳 벽난로 앞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랍비는 집으로 돌아가서 벽난로 앞을 파보았더니 그 곳에 보물이 있었다.” (하인즈와 하인즈 베리, p.1).

위의 이야기는 여러 의미에서 문학을 촉매로 참여자와 치료사(촉진자)간에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으로서의 문학치료의 원리를 요약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낯선 사람을 찾아가라는 말처럼 우리는 우리들 맘속에 있는 보물을 뜻밖에 낯선 타인들속에서 찾아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때낯선 사람은 일차적으로 문학치료가 사용하는 도구인 문학을 의미하며, 그 외 타인(낯선 자)”은 문학치료사 혹은 촉진자이다. 그 문학치료사는 또 다른 타인들즉 문학치료그룹의 참여자들과 함께 보물을 찾는 일이 용이하도록 도와준다. 이때 보물이란 이미 내가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바로 진정한 자아인식을 말하는 것이다.

이 예화에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드러나 있는데 자신의 집에 보물이 이미 있었다는 점이다. 즉 문학치료에서 치료란 바로 나 자신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초점이 외부의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나의 새로운 인식의 변화와 자아의 발견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위에 인용한 설화에서 "낯선 사람"을 찾아간다는 것은 문학/예술이 제시하는 새로운 시각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이다. 우리의 눈은 "낯익음과 이기적 근심걱정의 막(film of familiarity and selfish solicitude)"에 가리어져 있어서 세계의 경이로움 앞에 "눈이 있으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되 듣지 못하고 마음(심장)이 있으되 느끼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Coleridge) ""은 우리의 눈, 즉 판단력을 흐리게 할 뿐 아니라 구태의연한 습관성 때문에 통찰력이 무디어지고 자동화되어서 러시아 형식주의자 슈클로프스키의 용어를 쓰자면 자동기계(automaton)나 도식성(schemata)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과 예술은 그 막을 거두어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어야 하며 이것은 문학의 낯설게하기(ostranenie/de-familiarization)"의 효과인 것이다. 문학의 한 수법인 "낯설게 하기"는 문학치료에서 참여자/환자에게 자신의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큰 효과가 있게 된다.(이봉희, 2004)

요슈타인 가아더는 철학하는 유일한 능력은 놀라워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했다. 문학은 우리의 삶의 사소하고 작은 일상에서 경이로움과 즐거움에 놀라워 할 줄 아는 능력을 다시 회복시켜주고 개발해준다. 이러한 능력의 회복은 자아성찰로 이끌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더 심오한 정신과 영적인 경이로움인 믿음, 신뢰, 우정, 사랑, 아름다움, 등을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의 통찰력을 깨우쳐주게 된다.(이봉희, 2004) “아름다움이 인식되는 곳에서는 자아의 완성이 이루어진다.”고 하인즈와 하인즈 베리도 말한다.(1994:27) 그리고 이 때 개개인은 산타야나가 말하듯 자아의 속박에서 잠시라도 해방되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1961, 21-45.)

낯선자로서의 문학의 신선한 시각은 고착되고 습관화된 사고에 새로운 눈을 부여하게 되며, 제임스 밀러(James Miller)의 말대로 우리의 건강하고 창조적인 상상력을 유발시켜준다.” “지금 이 순간지금 이 장소로부터 자유로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이 없다면 우리는 시공간의 감옥에 갇혀 살 수 밖에 없는 수인(囚人)과 같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 언어를 통해자유롭게 무한한 세계로 탐험하고 새로운 진실들을 발견하며 결국 현실 속 우리자신과 세계의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다.

하인즈와 하인즈 베리는 또 다른 예로 알렉산더 솔제니친의암병동8장을 제시하면서 문학 상담을 소개할 수 있는 완벽한 부분이라고 말한다.(p.9) 모든 병실의 환자와 마찬가지로 예프렘 포드예프는 암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 그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을 찾기까지 피곤하고 짜증스러웠다. 이 책의 제목은 그가 암으로 인해 안고 있는 문제를 한마디로 잘 표현해주고 있었다. 그는 이 책에서 원동력을 얻어 모든 병실을 다니며 환자들에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질문을 한다. 그는 다양한 답을 얻지만 그 어떤 것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러나 포드예프는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대답에 귀를 기울이고 회고하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인생은 결코 자신의 문제를 걱정하면서 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사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포드예프는 다른 병실을 돌아다니며 질문과 설교하던 것을 그만두고 가만히 자신의 침실에 누워서 자신의 과거와 이야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문학치료모임과 문학상담에서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3가지의 요소의 상호작용을 볼 수 있다. 포드예프는 훈련받은 치료사가 아닌 다른 환자들의 동료였지만 촉진자의 역할을 한다. 톨스토이의 이야기는 문학(촉매)이고 병동에 있었던 환자들은 문학치료에 참여한 참여자(환자, 내담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효과적인 문학치료 세션의 예를 보여준다. 즉 책에 의해서 야기되었던 질문은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환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인생을 바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적어도 포드예프의 경우책을 읽은자체보다 환자(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음과 마음의 변화가 오고 곧 행동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하인즈와 하인즈베리, 9-10).

. 시적요소의 치료적 원리

꿈과 시는 심상, 전이(치환), 압축 등과 같은 동일한 심리학기제를 사용한다.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시인이다. 마음은 시를 짓은 기관이다.” 라고 말하여서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는 시의 역할을 강조한 프로이드는 시인을 전문적으로 백일몽을 꾸는 사람라고 말하면서 꿈과 시의 유사함에 주목하였다.(리디와 라이터, 1981)

문학이 감정의 해방을 통한 정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하는 데는 문학의 시적 요소들이 우리 정서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며 따라서 문학의 시적 요소들이 문학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이터,169) 문학이 갖는 시적 요소의 치료적 원리를 간략히 정리해본다.

카타르시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화(카타르시스)는 그 과정에서 정서의 통제 뿐 아니라 분출을 포함한다. 따라서 워즈워즈가 영혼불멸송시에서 노래한 것처럼 치료적 체험으로 이끄는 것이다.

내게 찾아온 건 오직 슬픈 생각 뿐

때맞춰 그 슬픔을 말하니 그 생각 사라지고

나는 다시 건강해졌네. (22-4)

워즈워즈 뿐 아니라 하이네의 시에서도 문학치료의 카타르시스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병은 모든 창조적 욕구의 궁극적 근거/ 창조하면서 나는 회복될 수 있었고/ 창조하면서 나는 건강해졌지.”

분노나 슬픔 같은 감정들이 표현되지 않거나 억압되어 있으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대신 육체적, 정신적인 부정적 증상으로 우리 안에 남게 된다. 캐슬린 애덤스를 비롯한 여러 저널치료 혹은 글쓰기치료의 전문가들은 감정은 좋고 나쁜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에너지이므로 억압할 것이 아니라 표현해서 해소시켜야 한다고 말한다.(애덤스, 1996) 페니베이커도 우리가 경험한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의 심각성 자체보다는 그것을 억압하고 털어놓지 못하는 데서 정신적 육체적 건강상의 질병이 초래된다고 말한다.(1990, 2004)

영국시인 바이런의 말처럼 시는 감정 뿐 아니라 상상력의 용암이기에 지진을 막기 위해서는 분출되어야한다.(라이터 재인용) 시를 읽고 쓰는 과정은 용암처럼 폭발 잠재력을 가진 심리적인 에너지가 분출될 수 있는 안전한 출구를 제공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심리적인 균형과 건강을 회복시켜주는 것이다.

이미지: 문학의 힘은 주로 이미지(심상)를 통해서 마음의 눈으로 보는 데서 온다. 심상은 꿈과 무의식의 언어이며 그렇기에 무의식적 자료들을 의식세계로 불러오는 촉매역할을 한다. 우리의 심리는 내적인 심상의 자극과 표현에 의해서 발달, 성숙해져간다. 자아인식은 문학, 연극, 움직임(), 소리(음악), 글쓰기, 말하기, 그림그리기, 조형물 만들기 등을 통해 나타나는 여러 이미지를 탐구하면서 이루어진다.

상징적인 재현이나 심상들은 소설, 신화, 동화, 연극대본, 영화 등에서 발견되는 시적인 요소들이지만 그 은유와 상징이 가장 풍성한 것은 시라고 볼 수 있다.

은유: 시는 은유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른 방법으로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게 해준다. 참여자(내담자)는 시 쓰기를 통해 산문 쓰기에서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의 문제들을 표출하게 됨으로써 문학치료 세션은 참여자(내담자)가 수치스럽거나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첫 발걸음이 될 수 있다.

섬세함과 미묘함: 시의 섬세하고 미묘함은 참여자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다. 따라서 문학을 매개로 사용하지 않는 다른 치료와 달리 위협적이거나 거부감이 덜하여서 일반 전통적인 상담이나 치료를 거부하는 사람도 문학치료에는 기꺼이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Rossitter, 1989)

동질감과 자아존중감: 페리 롱고는 시를 읽고 쓰는 것은를 정의하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를 강화시켜준다고 말한다. 나를 강화시키는 것은 세상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이 광대한 세계에 단절된 혼자가 아니며 이 세계의 모든 존재들에 연결되어있고 융화되어 있음을 느끼는 것은 자아 존중심을 키워주게 된다.(1991)

솔직성: 시는 미묘하고 다양한 층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기도 한다. (Murphy, 1979) 이 솔직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려운 문제를 탐색하도록 도와준다.

. 저널쓰기/글쓰기의 치료적 원리

참여자가 저널, , 노랫말, 그 외의 글로 쓰는 자기표현들은 치료과정에서 자아발견으로 가는 또 다른 통로라는 관점에 기초한 구체적인 활동으로 문학치료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저널치료란 독자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으며 기존의 일기(다이어리)를 문제해결과 자아발견과 성장을 목적으로 개발한 여러 글쓰기기법을 사용한 치료적 글쓰기를 말한다. 참여자가 내적 느낌을 글로 쓰는 것은 형태가 없는 감정과 생각들을 흰 종이 위에 흑색글씨로 외면화하는 것이다. 이 구체화작업은 참여자로 하여금 자신이 문제를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줄 뿐 아니라 글쓴이가 자신의 생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나만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것은 자아확립의 과정이며 결과적으로 보다 확실하고 긍정적인 자아이해와 새로운 통찰로 이어진다.

5) 문학치료의 방법

. 문학치료 자료의 선정

문학치료에서 사용되는 문학을 선정하기 위한 고정된 법칙은 없지만 기본적인 지침이 있다.

첫째, 보편적 주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동일시원칙에 따라 참여자가 작품의 내용이나 느낌, 생각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그 주제나 표현이 강렬해야한다. 보편적이란 것이 진부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진부한 시는 참여자의 깊은 내면의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없으며 새로운 깨달음으로 유도할 수 없다.(하인즈와 하인즈 베리, 66-7) 시의 주제나 표현이 강렬하다는 것은 자극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모두의 삶에는 비오는 날도 있지

어떤 날은 어둡고 지루한 것을”(롱펠로우, “비오는 날)

인생은 크리스털로 된 계단이 아니다.” (랭스톤 휴즈, “어머니가 아들에게)

셋째, 긍정적인 주제여야 한다. 문학치료사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해결할 수 있는 통찰력과 깨달음으로 이끌어지지 않는 혼란스럽고 절망적이거나 우울한 작품을 택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휴즈의 살아있는 것은 멋진 거야라는 시는 자살에 대한 시이지만 특유의 시적 재치와 삶에 대한 긍정적인 에너지로 훌륭한 치료시가 될 수 있다.

넷째, 난해하기보다는 이해가능한 시나 작품이어야 한다. 따라서 예술적 가치가 높은 시나 작품이 반드시 문학치료에 좋은 것은 아니다.

그 외 연령, 문화, 교육, 병력, 개인사, 등과 같은 내담자나 그룹의 성격과 특성을 미리 파악하여 치료 자료의 선정과 토의, 글쓰기 유도 등의 방향을 설정해야하며(미리 치료를 위해 선정하려는 문학작품의 리뷰를 쓴다.) 치료세션 중에도 민감하게 참여자들의 대화와 토론을 인도하여야 한다.

이때 교실에서의 문학수업과 달리 참여자들의 개별적인 감정적 반응에 직접적인 수정을 가하거나 문학의 내용을 강의해서는 안 된다. 또한 문학치료사는 참여자를 진단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치료 모임에서 주인공은 항상 참여자임을 기억해야한다.

 

 

. 문학치료세션

준비작업(워밍업)

긴장을 풀고 내면의 이야기를 이끌 수 있도록 준비 작업을 한다. 가끔 레크리에이션을 하기도 하는데 그보다는 두려움이나 긴장을 없애며 전 모임과 연결하고 이번 모임으로 이끌어지는 프로그램이 좋다.

치료세션

상호작용 문학치료는 크게 4가지 단계로 이루어진다. (이 단계는 치료사가 자신의 치료모임을 점검하고 성찰하여 기록할 때 꼭 필요한 기준점이 된다.)

첫째, 인식단계(recognition)

문학치료에서 시, 이야기, 영화 등이 참여자의 개인적,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 문학텍스트가 전달하는 메시지(작품의 주제) 때문이 아니라 주제나 생각을 표현하는 '언어적 힘' 때문이다.

둘째, 탐구단계(examination): 문학치료사(또는 촉진자)의 도움(대화, 토론, 질문)을 받아서 참여자는 문학작품에 대한 자신의 반응이 개인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좀 더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그리고 일관성 있게 탐구하게 된다.

셋째, 병치단계(juxtaposition): 대조와 비교를 통한 상호작용의 과정으로 토론 가운데 서로 다른 반응과 의견과 느낌, 탐구를 통해 자신의 문제와 생각에 새로운 관점과 지혜, 그리고 선택의 기회를 얻게 된다.

넷째, 적용단계(application): 문학치료사는 참여자를 격려하고 도와서 보다 더 깊은 자아 이해와 인지적 차원에 이르도록 한다. 이 새로운 깨달음을 현실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문학치료의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이 단계가 반드시 그 순서대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적용단계는 문학치료모임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으며 치료모임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일어나거나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탐구와 병치단계에서 참여자는 시/저널 등 글쓰기를 하여 자신의 깊은 내면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이때 문학치료사는 글쓰기 유도구문을 주어서 참여자의 글쓰기를 자극하고 돕게 된다. 이 유도구문은 치료사가 미리 준비해가야 하지만 인식, 탐구 또는 병치단계에서의 참여자의 반응에 따라 더 깊은 탐구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유도문을 찾아내야하는 통찰력과 순발력이 요구된다.

종료

문학치료사는 세션의 시간, 자기노출의 정도(참여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털어놓았는가), 그룹의 통일성, 세션동안의 긴장감의 정도 등을 고려하여 세션의 종료한다. 워밍업처럼 종료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2. 내 안의 시인을 깨우는 문학치료

내 안에서 솟아나오려는 것, 나는 그것을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헤르만 헤세)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인간이 존재한 이래 계속되어 온 그 오랜 신화를 잊을 수 있을까요? 마지막에 공주로 변하는 용에 대한 수많은 신화를. 어쩌면 우리 삶 속의 모든 용들은 우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한때는 아름답고 용감했던 공주였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모든 끔찍스런 것들은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 우리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슬픔이 한 번도 본적 없는 거대한 모습으로 당신 눈앞을 가로막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그리고 믿어야합니다. 삶이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의 손을 꼬옥 잡고 있다는 것을. 결코 당신의 손을 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라이너 마리아 릴케)

릴케는 우리 존재 깊은 곳에서 깨어나고 싶어 하는 간절한 목소리가 있다고 말한다. 문학치료는 내 안에서 도움을 청하는 아름답고 용감한 그 무엇의 간절한 목소리를 찾아주는 일이다. 내 안의 나의 모습이 때로는 내가 원치 않는 피투성이의 모습이거나, 용처럼 끔직스런 모습일 수도 있다. 내 스스로 미로 속에 깊이 가둬둔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처럼 나의 어둡고 고통스런 과거이거나 내면의 모순된 모습일 수도, 아니면 이카로스나 디달로스 같은 창조적 힘과 자유에의 욕망일 수도 있다. 그런 나의 모습이야말로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어서 나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진정한 ""이다. 그렇기에 문학치료는 바로 내안에 숨어있는 멋진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볼 수 있다.(이봉희, 2009)

셰리 라이터는 우리 각자가 멋진 토양이며 우리 속엔 시인, 내적 치유자, 창의성이라는 씨가 있어서 그 씨를 뿌리고 가꾸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 삶의 이유이며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하고 살아가는 힘이라고 하면서 창조성은 우리가 문을 두드려 잠을 깨우면 우리를 성장시키고 치유하는 능력이 된다고 한다. 롱고는 인간에게는 살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가 있으며 언어는 그 욕구를 충족시키도록 도와준다고도 설명한다. 우리의 생명력이 창조적으로 발휘되지 못하면 파괴적인 힘이 되어서 암처럼 생명력을 삼키기 시작하기 때문에 다시 창조적 힘을 되돌려줄 때 치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카파키오니) 문학치료의 정의 속에 글쓰기의 치유적 힘을 강조한 저널치료(journal therapy)를 적극적으로 포함시켜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왜 책을 읽고 글을 쓰지만 내 안의 치유자인 창조력을 꽃피우기가 그토록 어려울까? 어쩌면 단순히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행위자체만으로는 되지 않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또한 예술적으로 완성도 높은 시나 글이, 때로는 내 아픔에 공감을 주는 시가 모두 치료시는 아닐 경우도 많다. 따라서 문학치료는 종래의 독서요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학, 내담자와의 사이에 개입하는 치료사/촉진자의 역할을 중시하는 것이다.

문학치료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테세우스를 도와 내 안에서 도움을 청하는 아름답고 용감한 그 무엇의 간절한 목소리를 찾아주는 일이다. 그 간절한 목소리는 프로이드의 말을 빌면 우리 각자 속에 살고 있는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프로이드는 우리의 정신이 시를 짓은 기관이라고 말하면서 또한 우리 각자 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어서 이 세상에서 인류가 멸망하는 날 마지막 시인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도종환 시인은 프로이드를 인용하면서 내 안의 시인이라는 시에서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었다는데/ 그 시인 언제 나를 떠난 것일까"라고 묻고 있다. 그러기에 파프는 치료사가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사람들 속의 시와 작업하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일할 때 그들 내면의 시가 우리를 인도하도록 하면 치료사의 일을 바르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우리 각자가 하나의 시()라고 생각한다. 우리 각자는 해석, 또는 번역되어야 할 고유의 언어이며, 시이며, 상징이며 암호이다. 오해라는 말이 해석의 오류를 뜻하듯이 사람사이의 소통은 타인의 언어, 즉 시()로서의 타인을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번역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안경과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흔히 말한다. 그 뿐 아니라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사전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으로 상대의 말을 해석/번역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영어표현에 나는 당신과 다른 언어를 쓰고 있습니다.(I don't speak your language.)"라는 말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가끔은 세상에 나를 함부로 번역하지 말라, 당신의 언어로 나를 정의내리지 말라,”고 외치고 싶을 때가 있다. 이탈리아 극작가 피란델로(Pirandello)의 말대로 누군가를 정의내림은 살인행위이며, 노자의 말대로 무엇인가 명명될 수 있다면 그 이름은 더 이상 그것의 영원한 이름이 아닌지도 모른다(名可名非常名). 그렇기에 문학은 우리에게 시(정의 내릴 수 없는, 물질화 될 수 없는 모든 인간과 세상의 정신적, 영적 존재가치를 상징하는)의 가치에 대한 끝없는 도전을 던지는 것이다.

 

우리는 시가 아름다워서 읽는 게 아니다. 우리가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지. 의학, , 경영, 공학, 이런 것들은 고귀한 것이며 인간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지. 하지만 시, 아름다움, 사랑, 낭만 이런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인거야. 휘트만을 인용하면,

 

, 나여, 삶이여, 수없이 던지는 이 의문

믿음 없는 자들로 이어지는 도시

바보들로 넘쳐흐르는 도시

어디서 아름다움을 찾을까?

오 나여, 오 생명이여!"(휘트먼)

 

대답은 오직 하나네가 거기 존재한다는 것. 생명과 너의 존재가 여기 있다는 것. 인생이라는 놀라운 연극이 계속되고 있고 너 또한 그 연극에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놀라운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그 연극에 한편의 시가 된다는 것......., 너의 시는 어떤 것이 될까?” (톰 슐만, <죽은 시인의 사회>/필자 역)

 

나는 과연 어떤 시일까? 끊임없이 계속되는 강렬하고 놀라운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나의 시는 어떤 것이 되어야할까?

[내 안의 시인 - 도종환]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었다는데

그 시인 언제 나를 떠난 것일까

제비꽃만 보아도 걸음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어쩔 줄 몰라 하며 손끝 살짝살짝 대보던

눈빛 여린 시인을 떠나보내고 나는 지금

습관처럼 어디를 바삐 가고 있는 걸까

맨발을 가만가만 적시는 여울물 소리

풀잎 위로 뛰어내리는 빗방울 소리에 끌려

토란잎을 머리에 쓰고 달려가던

맑은 귀를 가진 시인 잃어버리고

오늘 하루 나는 어떤 소리에 묻혀 사는가

바알갛게 물든 감잎 하나를 못 버리고

책갈피에 소중하게 끼워 두던 고운 사람

의롭지 않은 이가 내미는 손은 잡지 않고

산과 들 서리에 덮여도 향기를 잃지 않는

산국처럼 살던 곧은 시인 몰라라하고

나는 오늘 어떤 이들과 한길을 가고 있는가

내 안에 시인이 사라진다는 건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최후의 인간이 사라지는 거라는데

지팡이로 세상을 짚어 가는 눈먼 이의

언 손 위에 가만히 제 장갑을 벗어놓고 와도

손이 따뜻하던 착한 시인 외면하고

나는 어떤 이를 내 가슴속에 데려다 놓은 것일까

(* 1, 18-19행은 S. Freud가 한 말을 인용한 것임)

 

 

3.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인문치료와 인문학교육의 만남의 가능성

릴케가말테의 수기에서 말하듯 세상은 거대한 병원인지 모른다. 실존적으로 불완전한 인간들은 모두 이런 저런 의미에서 어떤 질병이든 병에 걸려있거나, 또는 잠재적인 환자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그날)는 이성복 시인의 말대로 실존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들은 다만 병이 들고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외면하고 살아갈 뿐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악하기 이전에 깊이 병든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점차 저학년으로 확산된 학교폭력, 성과 위주의 교육과 스트레스로 인한 아이들의 심리적 상처와 육체적적 질병은 교육현장에서 인문학이 가야할 길을 환기시키고 있다. 문학/예술의 본래의 기능과 가치인 치료적 힘을 회복시키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인 것이다.

인문학의 가치 재평가로서의 문학치료 연구는 소외된 문학의 부활을 위해 새로운 학문으로서 문학치료연구를 개발함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문학치료연구는 결국 기존의 교육현장에서의 인문학 교육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도전이 되어야 한다. 인문학(humanities)’의 어원인 라틴어 후마니타스(humanitas)’인간다움을 뜻한다. 따라서 인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가치를 탐구하고 소외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가치에 대한 성찰은 결국은 나의 가치와 존재의미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하고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이 문학치료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교실에서의 인문치료는 가능할 수 있는가? 교실에서의 인문학수업은 수용자(독자)의 입장에서 본 치료의 기능보다는 인문학 자체가 그 목표가 된다. 한편, 인문치료에서는 인문학자체보다는 그것을 매개로 수용자(학생/참여자)의 개인적 반응에 초점이 주어진다. 또한 인문치료세션에서는 문학/어학/역사/예술/문화 등 자체만으로는 깨달음을 가져올 수 없으며 문학작품에 대한 대화가 실제로 촉매가 된다.(하인즈와 하인즈 베리, 51). 이 대화와 가이드라는 촉진자의 역할 부분에서 교사와 치료사의 역할이 만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봉희, 2006)

예술의 목표가 즐거움과 교훈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은 오랜 동안 문학과 예술의 가치의 한 기준이 되어왔다. 이 말은 사실 문학이 필연적으로 가지는 치료의 힘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왜 인문학은 그 원래 목표인 [즐거움과 교훈]이라는 것에서 즐거움이 사라졌을까? 문학치료사들이 종종 인용하는 미국 시인 로버트 포로스트의 말은 시가 주는 즐거움과 교훈이 별개의 것이 아님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시는 즐거움에서 시작해서 지혜로움으로 끝난다.” 인문학이 내 삶과 무관하거나, 따라서 비실용적인 지루한 지식으로 변질된 것은 그 교육방법에 문제가 있다. 우리가 학생들(수용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돕기 위한 매체로 인문학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인문학은 소외되지도, 그 생명력이 힘을 잃고 소멸되지도 않을 것이다. 프로스트의 또 다른 말은 치료적 힘을 회복하려는 인문교육의 방향에 대해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시의] 일차적 즐거움은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음을 기억하게 되는 놀라움에 있다.”

이것은 소크라테스의 상기설을 상기시킨다. 소크라테스는 일찍이 교육이란 새로운 것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두뇌에 등불을 켜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상기하여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돕는 산파술과 상기설을 주장했었다. 그의 대화로서의 교육법은 스스로 자기 안에 있는 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것이다.(이와 비슷하게 대화법은 저널치료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강렬한 기법중 하나이다.) 그리스 말로 지식/진리라는 말이 레테(lethe) 강에 빠진 망각을 건져 올린다는 의미로 아레테이아(aletheia)인 것은 무척 흥미롭다. 이렇게 자기 안의 답”(비난 받을까 두려워 내안에 사장되어버린 창조적 자아-Wonderful Child)에게 목소리를 찾아주는 것이야 말로 바로 건강한 인간회복과 치료적 가치를 살리려는 인문학 교육이이 사회에 기여하며 균형 잡힌 새로운 길로 나아갈 목표중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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