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생활의 비결/단6:25-28

말씀과삶 2012.03.09 18:34 Posted by 이동현원장 leedonghyun

승리 생활의 비결/단6:25-28


    구약의 다니엘 선지자는 믿음 생활에서나, 사회생활에서나, 건강하고 장수하는 육신생활에서나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원래 예루살렘에서 살았으나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는 16-17세의 젊은 청년으로 그의 세 친구와 같이 포로가 되었으나, 낯선 이방 나라에서 총리라는 높은 직위에 오르고, 많은 시기와 모함 가운데서도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고난을 이겼습니다. 그뿐 아니라 다니엘은 이방 나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낸 신앙인이요, 지극히 나라를 사랑한 애국자였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성공 비결이 무엇입니까?

    열두 장으로 되어있는 다니엘서를 주의깊게 읽어보면 1-6장까지는 그의 믿음을 바르게 세워가며, 또한 어려운 포로생활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7-12장까지는 장래 일어날 일들에 대한 예언의 말씀들로 엮어져 있습니다. 특히 다니엘서를 그의 승리 비결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보면 몇 가지 뚜렷한 내용이 있습니다.


1. 다니엘은 투철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의 생애 전체 속에 가장 강열하게 흐르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가 총리로 왕의 총애를 받고 있을 때 다른 총리들이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다른 총리들은 다니엘을 죽일 생각으로 왕에게 왕만 섬기게 하는 조서를 내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왕이외에 그 어떤 신에게 절하거나 섬기는 자는 사자굴 속에 넣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다니엘은 왕명보다, 자신의 총리직위보다, 심지어 자기 생명보다 귀하게 생각한 것이 매일의 기도였습니다(단6:10). 결국 다니엘은 이 일로 인하여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자의 입을 봉하여 다니엘을 해롭게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를 발견한 다리오왕이 하나님을 찬양한 내용이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다니엘에게는 그가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실에서 제공하는 산해진미를 거절하고, 채식을 먹음으로 믿음을 증거했습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우상 숭배에 바쳐진 음식을 거절했습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 섬기는 신앙 생활에 저해되거나, 양심에 꺼리기는 일은 일체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이 주는 부정식품을 먹으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리스도인들의 인격이 윤택해지고, 빛나고, 아름답게 됩니다.


2. 다니엘은 믿음의 모험을 실천했습니다.

    믿음은 모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험적인 실천을 통하여 믿음이 탄력을 얻고, 믿음이 성장하고, 더욱 확신을 갖게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느브갓네살왕이 만든 신상에 절하지 아니함으로 보통 불보다 칠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풀무불에 들어갈지라도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이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않고, 섬기지도 않겠다(단3:17-18)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험을 통해서 왕이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들을 칭찬하였습니다(단3:28). 신앙생활은 일반 문화생활과는 다릅니다. 믿음생활은 손익을 따지고, 분석하고, 재보고,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투자이기는 하나 문자적 이익을 위해 투자하는 상업주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고, 받은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입니다.


3.다니엘은 하나님의 역사활동에 민감하였습니다.

    역사학자들에 따라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의 역사관이 분명하면 하나님의 역사운용에 대하여 민감하고 예민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역사계시라고 합니다. 신앙의 마음이 깨끗하고 맑으면 하나님의 의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마5:8). 다니엘은 느브갓네살왕이 꿈에 본 신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의지와 열국의 운명에 대하여 분명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위기는 다니엘에게 오히려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중앙에 큰 나무꿈에 대해서도 분명히 해석하였으며, 벽에 쓰인 "메네메네 데겔 우바르신"도 벨사살왕의 자질 부족임을 지적했습니다. 그날밤으로 왕의 운명이 끝나고, 메대사람 다리오가 왕이 되었던 사실도 기억할 수가 있습니다.

     승리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분명해야 합니다. 세상이 변하고 주변이 요동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굳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모험을 통해 성장되고, 자라는 법입니다. 모험은 실패하고, 넘어질 수 있으나 아주 망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시37:24). 결국 믿음의 자질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헤아리시고, 하나님이 무게를 재실 때 믿음의 자질이 모자라지 않도록 담대하고 능력있는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형통한사람이 됩시다/단6:16-28

말씀과삶 2012.03.09 18:31 Posted by 이동현원장 leedonghyun

형통한사람이 됩시다/단6:16-28


    사람들은 모두 형통하기를 원합니다. 형통할 때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또한 형통하게 되면 사람들에게도 인정과 존경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누구나 형통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도 그의 자녀들이 형통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형통은 1회용이 아닌 시대를 초월하는 형통이라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나오는 다니엘은 시대를 초월해서 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그 나라에서 국무총리가 되었는데 다니엘이 재직 중에 나라가 2번이나 바뀌었고, 왕들이 4명이나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재직 중에 바뀐 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로 바벨론 나라의 느부갓네살 왕입니다. 두 번째는 그의 아들 벨사살 왕입니다. (단5:1) 세 번째는 다리오 왕입니다. (단5:31) 마지막 네 번째는 고레스왕 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리오 왕 때의 일입니다. 다니엘은 나라가 바뀌었는데도 그 나라의 국무총리로 재직하게 됩니다. 다니엘은 어떻게 살았기에 시대를 초월하는 형통하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하여 그 비결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다니엘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다니엘은 4왕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사람을 의지하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높은 사람을 섬기게 되면 그 사람을 의지하게 됩니다. 사람은 자기를 도와준 사람을 사랑하고, 그와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다리오 왕을 사랑했고, 왕도 또한 다니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의지한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셨습니다.

    다니엘의 방백들과 다른 총리들이 다니엘을 죽이려고 모함할 때에도 다니엘은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보통사람들 같으면 왕이 자신을 사랑하는 줄 아니까 왕과 상의 해서 선수를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자신을 축복 하고 지켜 주실 수 있는 하나님만을 의지하였습니다.

    또한 모함을 받아 사자 굴에 들어가는 위기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도 건져 주시고, 오히려 다리오 왕의 신뢰를 받게 되고 다리오 왕이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을 찬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잠29:25에 보면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2. 다니엘은 사람에게 구하기보다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의 삶의 우선 순위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단6:10에 보면 다니엘은 자신을 죽이기 위한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즉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 이였습니다. 다니엘은 기도를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귀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기도는 다니엘의 하루 일과중 거룩한 습관이었습니다. 기도를 빼고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통치하시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단2:20-21)

    단2:21에 보면 다니엘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 자에게 총명을 주시는 도다".

    성도여러분, 다니엘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사자 굴에서 사자의 입을 막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길이 막힐 때 기도는 하늘의 창문을 여는 Key라는 사실을 아시고 늘 기도에 힘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국 다니엘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의 도우심을 받아 형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3. 다니엘은 기도할 때 물질이나 지식보다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현대와 같은 지식사회에선 지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식은 하나의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식보다는 지혜가 더욱 중요합니다. 지혜는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이 기 때문입니다. 많은 지식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지식을 활용하는 지혜가 없다면 그 지식은 나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언인지 아십니까? 지혜입니다.

    (잠4:7) 성경에 보면 지혜는 너희 사모하는 모든 것보다 비교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솔로몬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고 하셨을 때 솔로몬은 무엇을 구했다고 했습니까?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다고 했습니다.

    (왕상3:12-13)  솔로몬이 지혜를 구했더니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시어서 그 지혜로 부와 영광과 장수도 갖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그 지혜를 가지고 왕들을 도와 국사를 잘 다스려 나가 왕에게 인정을 받는 총리가 되었으며, 또한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다니엘과 같이 시대를 초월하는 형통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만물을 섭리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주셨던 지혜를 주시어서 우리들도 이 땅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형통하는 자들이 되어 다니엘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실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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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의뢰한 다니엘(단6:13)

말씀과삶 2012.03.09 18:23 Posted by 이동현원장 leedonghyun


하나님을 의뢰한 다니엘(단6:13)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어려운 문제들이 생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또 다른 문제가 우리 눈앞에 다가와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다니엘도 어려운 문제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모든 어려운 문제를 다 이기고 승리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잘나서 승리하였던 것이 아닙니다. 승리할 수 있었던 것에 그 때 그 때 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처음 바벨론으로 끌려왔을때 환관장에게 은혜을 입게된 것도 바로 그 이유였습니다.

    단1:9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또한 당시 왕이 꿈을 꾸었을때 꿈을 해석하는자가 없어 많은 사람들이 죽게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꿈을 해석할 수 있도록 은혜을 베풀기도 하였습니다.

    단2:13 왕의 명령이 내리매 박사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 동무도 죽이려고 찾았더라

    단2:18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사 

   단2:23 나의 열조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바 일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계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이처럼 성도가 이땅을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나아가 성도자신의 믿음 즉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 또한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6:23下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다니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힘있게 언제나 의지했기 때문에 모든 문제, 모든 시련을 다 이기고 승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시간. 성도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저는 알 수 없지만, 여러분이 믿는 살아계신 하나님, 여러분이 항상 섬기시는 하나님을 더욱 더 의뢰할 때에 문제가 해결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기시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다니엘은 유다 사람으로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입니다. 그때 나이는 아마도 13세 - 18세 전후일 것으로 보입니다.(단1:4 소년의 나이)

    그는 유다의 왕족 출신으로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는 매일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던 믿음의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과 그의 아들 벨사살 왕, 그리고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으로 이어지는 세 왕을 섬긴 총리였습니다.

    보통 나라가 바뀌면 관리들을 죽이거나 감옥에 넣는 것이 예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여전히 왕의 신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다른 관리들에게 시기를 받았고, 결국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함정이 걸렸던 것입니다. 

    그것은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을 알고 한 달간 왕 이외에는 어느 신이나 신상에 경배하거나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도록 하는 법을 만들어 왕의 허락을 받아 전국에 공포했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총리직은 고사하고 사자굴에 들어가 사자의 밥이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신앙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했습니다.

    결국 그는 잡혀서 왕 앞에 끌려왔고 굶주린 사자굴에 들어갔습니다.

    다리오 왕도 이것이 다니엘을 시기하는 신하들이 만든 함정임을 알았지만 왕의 어인이 찍힌 공포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왕이 다니엘이 들어간 사자굴에 가서 다니엘을 불렀을 때 다니엘의 우렁찬 목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단6:22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였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다니엘은 하나님과 자신이 섬기는 왕앞에서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하나님을 의뢰하자라는 제목을 통해 은혜을 나누고자 합니다.



1. 다니엘이 환난을 당한 이유


    첫째, 다니엘이 당한 어려움은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문제을 당하거나 만날 때 대부분의 이유는 바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생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온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진 어려움은 바로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경배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았면 사자굴에 던져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불신가정이나 이방지역에서는 하나님께 경배하고 기도하면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죽임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딤후 3:12에는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경건하게 사는 것을 사탄은 미워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을 사탄은 가장 두려워합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사탄은 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은 다니엘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다니엘은 세상에서 어떤 왕보다 하나님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러하였기에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그는 사자굴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 시기하는 사람 때문에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최고권력자에게 사랑을 받으면 그 주변사람들을 그를 미워합니다. 그래서 그의 잘못이 조금이라고 있으면 그 자리에서 내려오도록 만들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거나 잘 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니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왕 주변에 있던 시기하는 신하들로 인해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성경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6:13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시기하는 신하들은 다니엘을 바사의 총리 신분으로 언급하지 않고, 유대인으로 언급합니다.
신분상 약점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 포로민이 바사왕의 권위에 도전하여 법령을 어기고 있는 것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조나단 스위프트는 “가장 좋은 과일을 새가 먼저 쪼아 먹듯, 가장 존경받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중상에 의해 피해를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논리입니다.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이 잘 되면 고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요한, 바울이 그러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복음의 열정이 넘쳐서 전도합니다.

    전도로 말미암아 그는 감옥에 갇힙니다. 하나님 때문에 그리고 시기하는 유대인들 때문에 감옥에 갇히지만 그는 천사의 손에 이끌리어 구원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요한도 복음 때문에 갇히고 조그마한 섬에 유배됩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계시를 받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은 복음만 아니었다면 얼마든지 세상적으로 출세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때문에 잡혀 고생하고, 매를 맛아 죽기도 하였으며 뱀에 물려 죽을뻔 했지만 구원을 받습니다.
이런 모든 사도들이 하나님 때문에 그리고 시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사자굴 같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이들이 이런 고생을 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니엘이 고난을 당한 이유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시기하고 모함하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성도여러분. 믿음대로 살고자하면 하면 할수록 어려움이 다가 올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같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시는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운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 하는 내 주를 더욱의지 합니다.
세월지나 갈수록 의지할 것 뿐일세 아무일을 만나도 예수의지합니다.(342장)

    성도에게는 환난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난과 어려움을 막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볼수 있는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환난을 막으시는 하나님 - 사자의 입을 막으시는 하나님

    16절에는 다리오왕이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으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다리오는 바사의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지만 무력한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절대 왕권을 가진 왕이였지만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맞이 하였습니다 .

    다리오 왕 자신은 지금 다니엘을 살릴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나는 구원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이 다리오의 생각이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아는데 까지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표현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다리오 왕이 이른 새벽에 급히 사자굴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부릅니다.

    단6:20下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그때 다니엘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2절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그리고 단6:17절을 봅시다.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쳐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함이었더라”

    “왕의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다니엘을 미워하고 시기 했던 사람들이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어 나오지 못하게 하기위해 굴 아구를 막는 것으로 부족하여 “왕의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쳤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다니엘을 살릴 방법이 없도록 방법을 취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2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도 봉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셔서 그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습니다.

    성도여러분

    다니엘을 죽이려는 자들이 다니엘을 굴속에 넣고 그 입구를 봉하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다니엘을 죽이려는 사자들의 입을 봉해 버리셨습니다.
    (할렐루야)

    그곳에 있던 사자들이 그 날 따라 배가 너무나 불러서 아무리 다니엘이 들어와도 먹고 싶지 않았던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단6:24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 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

    이 모습을 보면 그 날 사자들이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알게 됩니다.

   그 참소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리오 왕은 그 사람들의 처자들까지, 곧 온 가족들을 다 함께 굴속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굴 밑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그 배고픔에 달려들어 그 사람들의 뼈까지도 다 부숴뜨린 것입니다. 그렇게 배가 고팠던 사자들이 다니엘을 단숨에 잡아먹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서 입을 봉해버리시니 사자들은 다니엘을 잡아 먹지 못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갔을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자굴에 들어간 다니엘도 인간이었기에 두려워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자굴에 다니엘은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사자들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사자들 끼리 머리를 다듬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어을 것입니다. 후식으로 날 잡아 먹겠지. 다니엘은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자는 더욱 순한 양처럼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두려움이 사로 잡혀있어지만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한 순간부터 그는 두려움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앞에 조용히 무릎꿇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 전날의 한 숨변하여 내노래 되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찬455장 2절)


    성도여러분. 다니엘을 죽이려고 굴을 봉했을 때 하나님은 그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 원수들이 나를 으르렁거리는 사자 굴속으로 몰아넣고 도무지 빠져 나오지 못하도록 굴 입구를 봉해버릴 때 낙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를 삼키려는 사자들의 입을 봉해버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를 도우시는 방법을 잘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자의 입을 봉하신 것입니다.
    사자의 입을 봉하는 것은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처음부터 원인을 아예 제거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입니다.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싸우기 전에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싸우면 아무래도 상처가 납니다.
    싸우면 아군도 피해를 당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싸우지 않고 피해가 나지 않게 하십니다.

    시7:2 “건져낼 자 없으면 저희가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자굴에서 나를 건져내심으로 인해 내가 찢기고 뜯길 염려가 전혀 없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7절에는 비사의 총리들과 방백들이 다니엘을 던진 사자굴을 인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자굴을 인봉한 것은 다니엘의 무죄가 입증된다고 하더라도 다시 나오게 하지 못하는 조치입니다.

    다니엘을 죽이려는 그들의 의지가 확고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들이 사자굴을 봉하니까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을 봉하십니다.

    인간이 봉하면 하나님도 봉하십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간다고 큰 돌문을 굴려놓고, 돌문을 인봉하고, 로마 군인들이 지켰습니다.
    이렇게 그들이 무덤을 봉하니 하나님께서 로마병사들의 눈도, 귀도, 다 봉하시고 무덤의 돌문은 하나님이 여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때가 많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을 의뢰한 다니엘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질 때 하나님은 이미 천사를 사자굴에 보내셨습니다.

    단6:22上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사오니”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오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은 천사를 그 사자 굴속에 보내어서 사자들의 입을 막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다니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단6:23 “다니엘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하었더라”고 합니다.

    다니엘이 상하지 않고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을 의뢰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했다면 사자와 싸웠을 것입니다.

    만일 사자와 싸웠다면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아마 상처는 났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힘과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갔습니다. 그러나 해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죽을 고비를 여러번 당했습니다. 그러나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22:4에서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면 하나님이 건지 주십니다.

    그러나 자신을 의뢰하면 하나님은 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건지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세상을 의뢰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이사야 3:1에는 말합니다.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등으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세상을 의뢰하면 그 모든 것을 끊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의지하던 양식도 끊게 만드시고 나아가 애굽까지 쫓아내어 하나님을 의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것,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로보는 것이 우리의 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은 하나님을 봐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봐주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면 우리에게 은혜가 되고 우리에게 복이 됩니다.

   캘빈 밀러는 “십자가를 의지하지 말고 십자가에 달리신 분을 의지하라”고 그의 책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그 분이 달리셨기에 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의뢰할 것은 그분이 달리셨던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결론

    한 남자 아이가 아버지와 동물원에 갔습니다. 사자 굴 앞을 지나갈 때, 포효를 지르며 어슬렁거리는 사자에 놀라서 그 남자 아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얘야 무슨 일이 있니?” 새파랗게 질린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아빠, 저 사자가 보이지 않아요?” “보이지.”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철장도 함께 보고 있단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사자가 아니라 철장입니다. 우는 사자가 아니라 입이 봉해진 사자입니다.

    시편 40:2에는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이시간 온 성도들이 사자의 굴에서 다치지 않는 구원의 감격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자의 입이 봉해진 하나님의 권능을 날마다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지시는 구원의 감격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이 누렸던 사자굴에서의 구원의 감격이 우리 구원의 감격이 되기를 바랍니다.





일어나세요/겔37:1-10

말씀과삶 2012.03.07 22:43 Posted by 이동현원장 leedonghyun

일어나세요/겔37:1-10


    어느 날 나무꾼이 어미를 잃은 독수리 새끼를 발견했습니다. 불쌍히 여긴 나무꾼은 독수리 새끼를 데려다가 병아리 우리에 넣어 길렀습니다. 시간이 흘러 병아리는 닭의 모습으로, 독수리 새끼는 독수리의 모습으로 자랐습니다. 하지만 독수리는 자신이 독수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그 독수리는 낯선 독수리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유유히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를 보면서 두려움과 부러움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탄식을 했습니다. " 아 한번만이라도 저렇게 멋진 모습으로 날아봤으면" 이 독수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외모는 독수리지만 그 안에 닭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누군 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를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큰 군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2-3)

    이 정체성을 읽어버리면 문제가 심각하게 생깁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를 군인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정체성에 맞게 살기 위해서는 어떠한 삶의 자세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Ⅰ. 생각이 바꾸어져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환상에서 골짜기에 있는 많은 뼈들을 보게 되어집니다. 이 뼈들은 심히 많고 말라 비틀어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군인들의 뼈로서 매장조차 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패배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마치 무덤 속에 있는 시체와 같은 상태였습니다. (12절) 이 환상에 대한 설명은 11절에서 구체화되어집니다. "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포로로 잡혀온 유대 공동체의 절망적인 상태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그들의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라고 합니다. 오랜 포로생활로 말미암아 절망과 비관주의, 패배의식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가운데서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라고 질문을 하게 되어지고, 그는 "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뻔히 아는 형편을 하나님이 왜 질문을 하신 것입니까? 인간편에서는 철저하게 불가능하고 절망적이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가능함을 믿도록 도우시는 질문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기대를 돌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 너희가 살리라!"( 5,6,9,14)라고 반복하여 말씀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들의 부정적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한 청년이 문득 눈 앞에 커다란 냉동실이 있어서 호기심으로 '냉동실은 얼마나 시원할까'라는 생각으로 잠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문이 닫혀버리고 청년은 문을 두드리며 발악을 했습니다. 그후 절망감에 사로잡혀 청년은 유서를 썼습니다. " 이젠 완전한 절망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나를 죄어온다. 내 몸은 점점 얼음으로 변하고 있다. 조금 후면 꽁꽁 얼어 죽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틀 후 냉동실에서 숨진 청년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냉동실은 동작되고 있지 않았고, 실내온도는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섭씨 15도였습니다. 산소도 충분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싸늘히 식어 있었습니다. 무엇이 이 청년으로 죽게 만든 것입니까? 생각인 것입니다. 절망감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절망과 무기력함을 소망과 생명으로 바꾸어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겐 절망이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절망적 생각에서 소망의 생각을 가지실 수 있기 바랍니다. 약한 생각에서 담대한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바랍니다. 부정적 생각에서 긍정적 생각으로 사고를 전환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Ⅱ. 믿음으로 말씀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하신 대로 에스겔 선지자가 모든 뼈들에게 대언합니다.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가 살리라!"라고 선포를 합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세요. 뭔가 가능성 있는 대상도 아닌 뼈들을 향하여 "하나님 말씀을 들어라" 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잘 골라서, 그 중에서 가능성 있는 덜 마른 뼈를 찾아서, 거기에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모든 뼈들을 향해 말하자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뼈들이 모아지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그 위에 가죽이 덮히면서 사람들을 형성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습니다. 무에서 유로 창조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람아 잔잔하라라고 말씀을 선포하시자 풍랑이 잔잔하게 되는 능력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주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라고 선포하자 성전의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치료의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레오나르 다빈치가 친구들로부터 고아라고 따돌림당하며 기죽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할머니는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단다. 하나님이 너를 지켜 주실 것이야"라고 말을 하셨습니다. 그 긍정적 예언의 말이 늘 패배감에 사로잡힐 때마다 재기할 수 있도록 힘을 주었고, 결국 위대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선포한 것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로마서 4:18절 이하에 "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므로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도무지 가능성이 없는 환경일지라도 그것을 향하여 믿음으로 선포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Ⅲ. 성령의 역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하라"라고 대언을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여호와의 군대가 되어 하나님의 귀한 역사를 이룬 것 같이 성령님의 귀한 역사를 통해 영광을 돌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납시다.(행3:1-10)

말씀과삶 2012.03.07 22:38 Posted by 이동현원장 leedonghyun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납시다.(행3:1-10)


   오늘 본문에서는 40년된 앉은뱅이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그야말로 온갖 불행을 혼자 다 가진 자였습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하반신을 전혀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맨날 구걸해서 먹는 거지였습니다. 그는 누군가가 성전 앞에 데려다 주지 않으면 구걸도 못하는 형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동전 구걸해서 자립한다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살겠다는 여자가 없으니 장가갈 희망도 없습니다. 집 장만의 희망, 장가갈 희망, 가족들과 오손도손 살 희망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절망적인 것은 그는 한 번도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없고, 도움만 받으면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불행 끝 행복 시작의 사건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의 앞에 나타난 베드로와 요한이 이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를 일으켜 세워 준 사건이야 말로 엄청난 사건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사도들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면서 이 사람의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 사람은 얼떨결에 사도들이 끄는 대로 그냥 일어섰는데 신기하게 벌떡 일어났고, 걸어보니 걷게 되었고, 또 뛰어보니 뛸 수 있는 것입니다.

    드디어 이 사람은 불행에서 행복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밤 같은 삶에서 낮 같은 삶으로 전환되는 날이었습니다. 이제 이 사람은 집 장만의 꿈, 장가갈 꿈, 남을 도와줄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는 또 다른 장애자를 업어서 도와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무엇을 하였기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사도들이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면서 손을 잡고 일으킬 때 그냥 일어난 것 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본문을 통해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1. 앉은뱅이는 누구인가

    먼저 1절과 2절을 보겠습니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본문 2절을 보면 '나면서‘, ’사람들이 매고 오니‘, ’날마다‘ 이 세 마디가 그의 형편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4장 22절을 보면 이 사람의 나이는 40여세 쯤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무려 40년 동안 스스로 전혀 걸어 다니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손길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그를 아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날마다 성전 문 앞까지 옮겨졌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성전 문 앞에 앉아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것이 그의 삶의 전부였습니다.

    성도여러분 미문에 있던 앉은뱅이처럼 육체적인 앉은뱅이는 아니지만 영적 앉은뱅이가 아닌지 이 시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앉은뱅이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 스스로 활동하지 못하는 사람

    앉은뱅이의 첫 번째 특징은, ‘스스로 활동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2절에 보면, 사람들이 그를 메고 왔다고 합니다.
자기 혼자 스스로 걷지를 못하니까, 사람들이 메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요. 오늘날 우리 교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보면 자기 스스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수동적이 되어 남편에 끌려서 교회에 나오고, 아내가 가자고 하니까 가정의 평화를 위해 할 수 없이 예배당에 나오고, 친구가 가자고 하니까 못이기는 척 하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바로 앉은뱅이 신앙인입니다.
    예수를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은 그런 대로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교회를 6개월, 1년, 2년, 5년, 오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잊을 만 하면 ‘시험 들었다’, ‘시험보고 있다’고 하고, 심심하면 ‘누구누구 때문에 신앙생활 못 하겠다’, ‘무슨 무슨 일 때문에 교회 나가기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름 아닌 영적인 앉은뱅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육적인 생활이나 영적인 생활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타인에 의하여 움직이는 사람은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인생을 자기가 책임지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손에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의 손에 좌지우지 되는 ‘앉은뱅이 신앙인’이 아니라,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자립형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앉은뱅이의 두 번째 특징은,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왜 앉은뱅이가 성전 미문에 앉아 있었습니까? 구걸하기 위해서입니다.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로부터 구걸해서 그 돈으로 먹고살기 위해서 성전 미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장애의 문제, 가난의 문제, 등의 여러 가지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돈이면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자신의 모든 문제가 돈이면 해결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성도여러분! 앉은뱅이가 돈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일어날 수 없습니까? 그는 절대로 돈으로 일어나지 못합니다. 은과 금으로 일어나지 못합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과 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문제가 은과 금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돈이 이 세상에서 최고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 인생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눈앞이 있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

    앉은뱅이의 세 번째 특징은, ‘눈앞에 있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앉은뱅이는 성전 미문 앞에 앉아 수십 년 동안 구걸하면서도, 예배당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매일 성전 앞에 앉아서 성전에 오고가는 사람들로부터 구걸할 줄은 알았지만, 그에게는 내일이 없었습니다. 그저 그 날 구걸하여 그 날 먹고사는 하루살이 인생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위에 보면 멀리 바라보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땅을 떠나가면 어떻게 될 것인지 죽음 이후를 생각하지 않고, 이 땅에서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다한 후, 이 땅을 떠나가면 심판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이 앉은뱅이가 걸었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예수의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누구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하면서 그의 오른 손을 붙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앉은뱅이의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40년 동안 단 한번도 일어나 본적도 없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는 성전 미문에 앉아있으면서도 믿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믿음은 그의 이 삶의 절실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혀 알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문제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인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수동적인 삶에서 적극적인 삶으로, 문에서만 맴도는 신앙이 아니라 중심으로 들어온 신앙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러한 일들이 나타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영적으로 앉은뱅이가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놀라운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기를 위해 3가지를 해야 합니다.


    첫째,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의 충만을 받는 사람이요,
기도하는 사람은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적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생각을 하면 사람이 움직이지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움직인다. ”라는 말처럼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유대인들이 하루 세 번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좋은 전통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기도하는 것은 쉽고, 저녁에 일을 마치고 기도하는 것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낮에 기도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일 하는 중에 기도하기 위해서 일을 쉬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을 시작하는 아침에도 기도로 하나님께 의논과 지혜와 도우심을 구함으로 시작했습니다. 일을 진행하면서도 기도로 능력을 구하며 일을 했습니다. 일을 마치고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코카콜라의 창업자인 아사 G 캔들러는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그는 항상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의지력도 나약했습니다. 주위사람들에게 몇번이나 금주 선언을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귀가하던 그는 벼락같은 마음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자신의 본능적 요구를 거절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캔들러는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내는 바로 그 시간에 캔들러의 '금주'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부부는 서로 손을 잡고 눈물의 기도를 드렸고, 캔들러는 아내의 기도를 통해 영혼의 안식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알코올의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기도 의 능력으로 술을 끊은 것이었습니다.

   캔들러는 그때부터 수입의 10%를 철저히 헌금했습니다. 코카콜라 회사는 창업주의 금주 선언 이후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한 사람의 기도는 엄청난 일을 이루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자만 체험하는 것이요, 기도해 본 사람만 누리는 특권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능력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 앞에 무릎을 끓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주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몸부림을 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애에 기도가 회복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기도의 시간의 시간이 회복되어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이름을 믿어야 합니다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고 눈이 마주쳤습니다.
앉은뱅이는 은이나 금을 원하였지만,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을 주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구원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힘들거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앉은뱅이의 신앙으로 있습니까?
그렇다면 예수의 이름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일어나게 될것입니다.

   앞으로 삶이 힘들고 지치고 답답해도, 염려하지 말고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기만 하면 어디서든지 어느 때에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진 믿음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에게 ‘우리를 보라.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외쳤습니다. 우리의 심령 속에도 주님이 계실 때 세상을 향하여 "우리를 보라" 고 담대히 외칠 수 있습니다.
    절망 속에 빠져 있던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의 눈동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의 손을 잡는 순간, 앉은뱅이는 자기를 일으키는 예수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우리를 보라"고 할 때 앉은뱅이는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무언가를 바라보아야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아도 좋은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극장 프로그램을 보면 극장에 가고 싶고, 술병을 보면 술 마시고 싶고, 도박판에 가면 도박하고 싶고, 춤추는 사람을 보면 춤추고 싶어집니다.

   엉뚱한 곳을 바라보는 사람은 파멸에 빠지고 맙니다. 더럽고 추한 것을 보면 더럽고 추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창조적인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의 친구는 어려서부터 산간지방에서 자라났고 그 지역의 산에 대하여는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미국의 산은 매우 거대하기 때문에 산에서 길을 잃으면 목숨을 잃기 쉽다는 것을 잘 아는 그 사람은 당황했습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하여 노력하는 중에 마침 다행스럽게도 산속 오두막집에 혼자 살고 있는 노인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살아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노인이 남겨준 말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젊은이, 산에서 길을 잃으면 보통 사람들은 길을 찾아야겠다고 산밑으로 내려가는데 그것이 죽는 길이라오. 산중에서 길을 잃으면 반대로 위로 올라가야만 사는 것이라오. 위로 올라가서 자기의 위치를 발견하고 어디에 길이 있는지, 어떤 쪽에 마을이 있는지 분명히 방향을 확인하고 내려가야만 사는 것이라오."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오면 세상으로 조급히 내려갈 것이 아니라, 더욱 위를 사모하며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가까이 가면 문제와 역경이 해결됨을 믿어야 합니다. 이처럼 앉은뱅이는 위를 보는 순간에 놀라운 기적 가운데 걷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기적을 체험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신앙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직장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가정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교회가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라가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마음에 새기고, 예수의 이름에서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3. 일어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8-9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8절 “뛰어 서서 걸어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개인의 인생이 회복되었습니다.
    가정이 회복되었습니다.
    그  주변이 이 일로 인해 놀라기는 하였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일어날 때 지금까지 남에게 도움만 받던 그가 이제 부터는 남을 도울 수 있는 인생으로 탈바꿈하게 되었습니다.
   일어날 때 땅만보고 원망만 하던 그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일어날 때 주변사람들이 하나님의 귀한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탐험가 봅 바틀렛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외국을 여행하는 중에 아주 희귀한 새 몇 마리를 얻었답니다. 본국에 돌아 오기 위해 새장에 가두고 망망해를 항해합니다.
    그 중에 한 마리가 유난히도 시끄럽게 굴면서 새장에 갇혀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새장을 발톱으로 할퀴고 머리를 찧는 등 몸부림 치고 열광을 하였습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여 그 새를 망망 대해로 날려 보내었습니다. 새는 미친 듯이 기뻐하며 창공을 높이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몇  시간 후였습니다. 그렇게 날아올랐던 새들이 다시 배로 돌아와서 지친 몸으로 갑판 위에 떨어져 쓰러졌습니다.
    자유를 얻었다고 날아올랐지만 망망대해에 발붙일 곳이 어디있고 먹을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어 담아서 다시 새장에 집어넣었습니다. 더 이상 이 새장은 그들에게 감옥이 아니었습니다. 새장은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끝없는 바다를 건너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이 새장에 있었습니다.
    굶주린 배를 채울 수도 있고 편안하게 거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이 새장 안에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 떠나 교회 떠나 가정 떠나 어디에 행복이 있고 안식이 있습니까? 신기루처럼 잠깐 행복이 있는 것처럼 안식이 있는 것처럼 행복이 있는 것처럼 자유가 있는 것처럼 보일 따름입니다.


    우리 주님 안에서 이제 일어나야 합니다.

    실패의 현장에서 앉은뱅이 신앙에서, 앉은뱅이 마음에서 앉은 뱅이 습관에서, 앉은 뱅이 삶의 방식에서 일어나야합니다.

    우리의 환경이 이루 말할수 없을 만큼 힘들지라도 나사렛 예수이름으로 일어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