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람들은 중독자을 포기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누가복음 826-40절에 보면 거라사인 땅의 귀신 들린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가족을 떠나 있고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피했고 그도 세상사람들과 함께 있지 못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를 만난 후 그는 옷을 입고 정신을 돌아왔습니다.

 

오늘날 많은 중독자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중독의 치료방법을 심리도구로만 치료하려고 합니다.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속에는 많은 귀신들이 들어가 있었지만 주님은 그를 치료했습니다. 오늘날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대부분 복합중독에 빠져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독자 가족들은 그를 바라보면서 포기하거나 어쩔 수 없다고 단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중독자의 과거와 현재만으로 그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을 보십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하고 계시고 우리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종교중독자였던 사도바울, 예수을 믿는 사람을 잡아 끌고가는 그런 구제불능의 사람 사도바울을 주님은 초대교회의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당시 초대교회 교인들은 그의 이름만 듣기만 해도 두려웠습니다. 그의 뒷모습만 보더라도 잡혀 갈까봐 두려워했습니다.

 

그가 다메섹에서 변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무도 그 이야기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사람들을 속인후 다시 돌변해 초대교회성도들을 잡아 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미래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일하시고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그의 변화는 이제 초대교회의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이 미워서 버렸다면, 용서하지 않으시고 포기했다면 그는 더 악한 사람이 되었겠지만 주님은 그를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초대교회의 지도자로써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된 겁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 봅니다. 우리의 모습도 사도 바울도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거라사인 귀신 들린 사람들처럼 무언가 쫒겨 가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물질일 수도 출세일 수 도 성공일수도 있습니다. 물질로 성공하고 공부로 성공하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자신의 상처 때문이라면 이 상처을 치료받지 않는다면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습니다. 중독에서 벗어 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부모도 형제도 가족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